술이 있는 주막집

[스크랩] 고종달이와 혈

산술 2010. 11. 16. 11:43
옛날 중국 진시황의 왕비가 죽었다. 왕은 후궁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사방에 풀어 미인을 구해들이라 했다. 신하들이 여러 곳에서 미인을 골라 바쳤지만 왕은 고개를 내저었다.

신하들은 미인을 찾아 제주에까지 왔다. 그리고 의외로 천하일색을 발견해 왕에게 데리고 갔다. 그렇게 까다롭던 왕의 얼굴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여인은 백정 집안 출신인데 미모가 그렇게 뛰어났던 것이다.
후궁이 된 여인은 얼마 뒤 태기가 있더니 열 달 만에 커다란 알 다섯 개를 낳았다.

알이 점점 커져 집 안에 가득해지더니, 깨지면서 알 하나에 백 명씩 장군 오백이 튀어나왔다. 오백 장군은 날마다 “칼 받아라, 활 받아라” 하며 뛰어다녔다.

그 장군들로 인해 나라가 꼭 망할 것 같아, 진시황은 장군들을 어찌 처치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느 날 용한 점쟁이에게 점을 쳤다.

“제주에 있는 장군혈의 정기로 이런 장군이 태어난 것입니다. 가서 그 장군혈을 떠버려야 합니다.”

진시황은 곧 고종달이를 시켜 제주의 모든 혈을 떠버리라고 했다.
지리서를 들고 제주를 향해 떠난 고종달이의 배는 구좌면 종다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고종달이는 인가를 찾아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종다리요.”
“내 이름을 동네이름으로 쓰다니, 무엄하구나.”

화가 난 고종달이는 우선 종다리의 물 혈부터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서 온갖 혈을 뜨고 다녔다.
어느 곳엔가 이르러 고종달이는 한 혈을 발견하고 혈 가운데다 쇠꼬챙이를 쿡 찔렀다. 마침 옆에서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쇠꼬챙이를 빼서는 안 되오.”

고종달이는 농부에게 신신당부하고 다음 혈을 뜨러 갔다.
조금 있으려니 어떤 백발노인이 농부 앞에 나타나 매우 고통스러운 듯 울면서 애원했다.
“제발 저 쇠꼬챙이를 빼 주시오.”

농부는 예삿일이 아니라고 느끼고 쇠꼬챙이를 뽑았다. 쇠꼬챙이가 꽂혔던 구멍에서 피가 좍 솟아올랐다.

노인이 얼른 그 피를 막자 평소 상태로 돌아왔다. 농부가 정신을 차려보니 백발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 혈은 말혈(馬穴)이었다. 다행히 쇠꼬챙이를 뽑아버렸기 때문에 제주에 말은 나는데, 피가 솟아버렸기 때문에 제주도의 말은 몸집이 작아졌다고 한다.
고종달이는 제주시 화북마을에 이르렀다.

그가 들고 온 지리서에 적혀 있는 ‘고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이란 물혈을 끊기 위해서였다.
고종달이가 지리서를 보며 마을 안으로 들어설 즈음, 어느 밭에서는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 밭으로 한 백발노인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농부를 보고 매우 급하고 딱한 표정으로 하소연했다.

“저기 물을 요 행기(놋그릇)로 한 그릇 떠다가 저 소 길마 밑에다 잠시만 숨겨 주십시오.”

농부는 백발노인이 하도 다급해 보여 영문을 물어볼 겨를도 없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랬더니 노인이 행기의 물속으로 살짝 들어가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그 노인은 수신(水神)이었다.

농부는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려나보다 생각하며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려니 어떤 부리부리한 사내가 개를 데리고 나타났다. 바로 고종달이었다. 고종달이는 지리서를 들여다보며 노인에게 물었다.

“여기 고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이란 물이 어디 있소?”

농부는 처음 듣는 샘물 이었다.

“내 평생 이 마을에 살고 있지만 그런 물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소.”

  고종달이는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여기가 틀림없는데.”

고종달이가 가진 지리서가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수신이 행기 속의 물에 들어가 길마 밑에 숨을 것 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부랑나무란 길마를 말하는 것이고, 행기물이란 행기 그릇에 떠 놓은 물을 말하는 것이지만 고종달이는 그 뜻을 몰랐던 것이다. 농부 또한 알 리가 없으니, 그런 샘물은 없다고 대답할 밖에.

그런데 고종달이가 데리고 온 개가 물 냄새를 맡고 길마 있는 데로 갔다.
농부는 햇볕을 받지 않게 하려고 길마 밑에다 점심밥을 놓아두었는데, 개가 그것을 먹으려는 줄 알고 쫓았다.

“요놈의 개가 어디 내 점심밥을 먹어 보려고!”

농부가 막대기를 들어 때리려 하자 개는 저만큼 도망가 버렸다.

“이놈의 지리서가 엉터리로구나!”

고종달이는 암만 찾아봐도 샘물이 없자 지리서를 찢어 던져버리고 개를 데리고 가버렸다.

그래서 화북리의 물 맥은 끊어지지 않아 지금도 샘물이 솟고 있다. 그때 행기그릇 속에 담겨 살아난 물이라 해서 ‘행기물’이란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까지 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천이의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처니 원글보기
메모 :

'술이 있는 주막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홍탁삼합  (0) 2010.11.16
[스크랩] 삼성헐 신화  (0) 2010.11.16
[스크랩] 배 큰 정서방과 말머리  (0) 2010.11.16
[스크랩] 노형동 광평당  (0) 2010.11.16
[스크랩] 용연과 기우제  (0) 201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