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있는 주막집

[스크랩] 불영계곡의 사랑바위

산술 2010. 11. 16. 11:42
봉화에서 36번 도로를 빙글 빙글 돌듯 넘어가다 보면 낭떠러지에 기이한 바위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사랑 바위'   언뜻 보면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돌덩어리인데, 자세히 보니 두 남녀가 숲 속에서 짙은 애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길고 긴 입맞춤을 나누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이상하다. 바위는 그저 바위일 뿐인데, 그걸 발견한 사람들이 사랑바위니 뭐니 하며 희한한 이름을 갖다 붙이고 애틋한 전설 하나를 만들어냈다. 전설이 하나 붙으니 정말 그럴싸하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대단하다.

 

 

  ▲ 길고 긴 입맞춤을 나누는 바위인가?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수명장자와 바리공주, 강림도령과 막막부인이 살던 그 오랜 옛날이었단다. 부모님이 호환을 당하여 천애고아로 자라난 오누이가 있었다. 둘은 불영사 계곡의 깊숙한 곳에서 약초를 캐며 정답게 살았는데, 어느 날 오빠의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산신령은 하늘의 옥황상제께서 병이 드셨고 불영사 계곡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를 다려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산양들이 삼지구엽초를 다 뜯어먹어 기암절벽 위에 겨우 남아 있으니 그걸 구해오면 큰 상을 주겠다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오빠는 꿈속에서 만난 산신령의 모습과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여 사실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오빠의 기척소리에 어느새 누이동생도 잠에서 깨어났다. 누이는 천상의 선녀처럼 눈부신 미모를 지녔으며 입가에는 늘 촉촉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오빠는 누이에게 신령을 만난 꿈 이야기를 전했는데, 누이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듯 했다. 두 사람은 오누이이면서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며, 연인이면서 다정한 오누이였다. 세상에 단 하나 의지할 사람은 오직 그들 자신뿐이었다. 누이는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도 오빠를 따르리라 결심한다. 오빠는 그런 오누이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아무 일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이른다.

 

 

  ▲ 나무 잎 뒤의 사랑바위

 

두 사람은 그날부터 정화수를 떠놓고 사흘 밤낮을 빌었다. 그런 후에 불영사 계곡의 높은 절벽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마침내 오빠가 높디높은 기암절벽의 갈라진 틈에서 세 가닥으로 곱게 줄기가 나뉘어 진 삼지구엽초를 발견했다. 각 줄기에 돋아난 세 개의 잎들에는 연한 갈색이 곱게 채색되어 있었다. 오빠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손을 길게 뻗고 말았다.

 

그러나 불행은 너무나 쉽사리 찾아 오는 법. 그가 손을 뻗어 삼지구엽초에 다가갈수록 그의 발도 허공을 향해 내딛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삼지구엽초를 잡은 순간, 그의 두 발은 푸른 허공 속으로 푹 빠지고 말았다. 오빠는 떨어지는 그때에 보았다. 삼지구엽초의 하얀 꽃잎 위로 사랑하는 누이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을. 아, 나의 누이여.

 

누이는 넋을 놓았다. 오빠는 그녀에게 오빠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였다. 천지간에 사람이라곤 오직 둘 뿐이었다. 오빠이자 연인인 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으며 누이는 오빠가 없음을 절감했다. 그저 눈물만 흘려야 했다. 오빠를 앗아간 절벽과 계곡을 향해 저주의 언어를 터트려야 했다. 그러기를 사흘, 마침내 누이는 아리땁고 여린 몸매를 곱게 단장한 후 오빠가 죽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야 말았다. 떨어지는 그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흘러내렸다.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그녀의 입가에 서려 있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들 남매가 떨어져 죽은 곳에서 이상한 바위 하나가 생겨났다. 건장한 남자가 여린 몸매의 여인을 다정하게 안은 채로 긴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의 바위. 삼지구엽초를 다려 먹고 병이 나은 옥황상제의 조화였을까. 아니면 그들 남매가 떨어져 죽은 자리에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을 산신령이 불쌍히 여긴 탓일까. 두 연인이 평생 동안 떨어지지 말라고 그들을 바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통곡소리가 들리던 산은 "통고산(통곡산)"으로, 사랑하는 오누이가 떨어져 죽을 때 흘린 피가

온 개울(왕피천)을 흘러 그 주변의 소나무는 껍질과 속까지 붉은 "울진소나무(적송, 금강송)"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바위에는 이처럼 애틋한 전설이 숨어 있으며 사람들은 그 전설의 신비를 경험하고자 오늘도 부지런히 숲 속의 사랑바위를 찾아온다. 흔히 그렇듯이 이 사랑바위에도 민간 속설이 전해져 온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이 바위를 찾아 사랑을 빌면 영원한 사랑을 얻는다고 하며, 이곳에서 생산된 삼지구엽초를 다려 먹으면 부부간에 금실이 좋아진단다.

  

사랑바위를 보려면 먼저 불영사 계곡을 찾아가야 한다.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이한 바위와 청류가 흐르는 불영사 계곡. 경북 북부의 동쪽인 울진과 봉화 땅을 굽어보는 태백 준령 사이에 놓여 있는 천혜의 비경, 불영사 계곡. 너무나 다행히도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 놓아 원시 계곡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바로 불영사 계곡이다.

 

 

 

 

 ▲ 백설의 화강암과 흘러가는 청류

 

오래 전부터 그 명성이 자자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금강산 계곡의 깨끗함을 그대로 재현하는 감동을 불영사 계곡은 안겨준다. 2억 5천 만 년 전에 성류굴을 만들어낸 왕피천이 쉴 새 없이 바위틈을 지나가고, 버들잎처럼 가는 허리를 자랑하는 청류들이 기암괴석을 벗 삼아 아래로 아래로 흘러만 간다.

 

 

둥굴게 휘어진 계곡 사이에는 두 남매의 순결한 사랑을 닮은 흰 화강암들이 신비한 형상으로 누워 있다. 푸른 물줄기는 순간순간마다 깊음과 얕음을 반복하면서 청석 사이로 지나가고, 물이끼 하나 없는 바닥에는 은린을 자랑하는 민물고기들이 유유자적하게 헤엄치고 있다. 이런 계곡이었기에 옥황상제의 병을 다스리는 삼지구엽초가 자라나며, 이런 계곡이었기에 연인이자 남매인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것이다.

 

 

불영사 계곡을 천천히 완상하며 사랑바위를 찾아가는 묘한 기분은 느끼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다. 그 이름마저 에로틱한 사랑바위. 무슨 사랑을 나누기에 바위가 그런 이름을 받았을까 궁금해 하며 아찔한 불영사 계곡의 묘미를 즐겨 보시라.

출처 : 천이의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처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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