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출(늘어진 줄기)이 솟아올라 하늘까지 가닿을 듯한 ‘능소화(凌霄花)’는 그 이름(범할 능凌, 하늘 霄)이 말해 주듯 '하늘을 범한 꽃'으로 불린다.
중국이 원산지로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고, 일반 상민이 자신의 집에 이 꽃을 심으면 관가에서 잡아다 곤장을 때리고 심은 꽃은 뽑아버리고 두 번 다시 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여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늘 화려한 자태로 요염함을 자랑하며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기생꽃’이나 ‘요화(妖花)’라고도 불렸다. 꽃말은 ‘명예’이다.
꽃잎은 다섯 갈래로 되어 있다. 꽃부리는 나팔모양이고, 꽃차례는 원뿔 모양이다. 그래서 영어이름도 ‘Chinese trumpet creeper’라고 한다. 능소화의 특징은 덩굴의 길이가 자그마치 10m에 달하고 줄기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생겨 다른 사물에 잘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능소화엔 벌레가 달리 붙지 않으나 벌들은 즐겨 찾아온다. 그만큼 밀원(蜜源)이 풍부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꽃잎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도 능소화의 특별함이다. 꽃술이 눈에 들어가면 따갑고 고통스럽다. 누군가 능소화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꽃을 따거나, 떨어진 꽃을 줍기만 해도 능소화의 충이 눈에 들어가 실명까지도 할 줄 모른다고 한다. 꽃은 약용으로도 쓰여 핏줄이 터져 어혈(瘀血)이 생겼을 때 쓰면 효능이 있다고 한다.
전설1)
작은 시골마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화'는 아주 어여쁜 아가씨였습니다. 얼마나 어여쁜지 근방의 총각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 가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소문은 소문을 타고 궁궐에까지 들어갔고, 임금은 소화를 궁녀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여쁜 소화에게는 말 못 할 아픔이 있었으니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했으니 자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소화, 그래서 그는 누가 자기를 바라보면 그저 웃어주었던 것이죠. 그렇게 웃는 모습만 보아도 너무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은 소화가 벙어리라는 사실조차도 몰랐습니다. 단지 수줍음을 많이 타서 그런가 했던 것이죠.
소화의 어머니는 그저 소화가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 못하는 벙어리인데 아무리 예뻐도 평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때로 산신에게 '저보다 딸이 먼저 죽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소화가 궁녀로 뽑혀 가자 경사가 났다고 했지만, 두 모녀에게 그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두 모녀는 밤 새워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것이죠.
"소화야, 그 곳에 가서도 잘 지내야 한다."
소화는 궁궐에 들어가자 곧 임금의 눈에 들어 빈(嬪)이 되었지만 소화가 벙어리라는 것을 안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를 찾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른 궁녀들도 그녀를 시기하였고 소화는 가장 깊은 곳, 구석진 곳에 살게 되었단다. 그렇게 임금에게 잊혀져 살아가던 소화는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한편 소화를 궁궐로 보낸 뒤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바늘방석에서 지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화를 팔아 자기가 편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죄의식도 느꼈습니다. 궁궐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의 소식은 빈이 되었지만 벙어리란 것이 알려진 후에 궁궐의 가장 깊고, 구석진 곳에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실 즈음에 소화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다시 찾아주지 않는 임금에 대한 원망과 궁녀들과 다른 빈들의 시기와 질투 등으로 앓아 누웠습니다.
"하나님,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하나님, 단 한 번만이라도 소화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 모녀의 간절한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마침내 어머니는 소화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울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궁궐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소화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집을 찾았습니다. 동네사람들마다 혀를 차며 두 모녀의 기구한 운명을 슬퍼하였습니다. 소하는 어머니의 무덤에 엎드려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소하야, 울지 마라. 에미가 네 귀가 되어줄게."
소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난생 처음 생생하게 귀로 듣는 소리였습니다. 어머니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어머니, 아니에요. 편히 쉬세요."
무덤가에서 소화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벙어리라더니 저렇게 또박또박 말을 하잖아!"
"그럼, 그게 헛소문이었단 말인가?"
소화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분명히 남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요.
"어머니!"
"그랴, 여름날이면 내가 있는 궁궐 담을 끼고 피어나마. 그래서 우리 소화가 임금님에게 사랑받는 것도 봐야지. 내 무덤가에 있는 흙 한 줌을 가져다 네가 거하는 궁궐 담에 뿌리려무나."
장례식을 마치고 궁궐에 들어간 소화를 임금님이 불렀습니다.
"빈은 그동안 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가?"
"사실은 그동안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습니다."
"그래? 짐은 빈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런다고 생각했었소."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목숨을 거둘 수도 있었으나 너무 아름다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소."
소화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무덤에서 가져온 흙을 궁궐의 담에 뿌렸습니다. 임금의 사랑을 듬뿍 받을수록 소화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이른 봄부터 어머니 무덤가의 흙이 뿌려진 궁궐담에는 푸릇푸릇 싹이 나오며 담장을 기며 이파리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날, 귀 모양을 닮은 꽃이 피었습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
그 이후로 능소화는 아주 오랫동안 궁궐을 출입하는 양반들 집에 심기워져 사랑을 받아 '양반꽃'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답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끝내 다시 피어나는 강인한 꽃이 된 이유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피어났기 때문이랍니다.
전설2)
옛날 옛적에 수놈 호랑이 한 마리와 인간으로서 아직 완전한 호랑이가 못 된 암놈 반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99년을 같이 뒹굴며 살아온 이 불완전한 한 쌍은 100년에 한번 인간의 몸으로 합방을 한 후 잉태해서 낳은 아기호랑이를 하늘로 올려보내 옥황상제 아이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는 것을 꿈으로 키우며 지내 왔습니다.
호랑이와 합방을 해야만 진정한 호랑이가 되기 때문에, 또한 암놈이 인간반 호랑이 반이기에 인간의 몸으로 첫날을 치러야했습니다.
암호랑이는 산골마을 이진사댁에 태어나 연지라는 여자아이로 자라났고 수호랑이는 9살 먹은 창주라는 남자아이로 변신을 해 10년을 기약하며 김서방네 머슴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호랑이 세계의 1년은 인간에겐 10년의 세월이었다.
호랑이 99년을 가슴깊이 묻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며 바라보면서 10년을 한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머슴 창주가 들어온 후 김서방네 집엔 살림이 일고, 경사가 겹쳐 김서방집 식구들은 창주를 가족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처럼 10년이 흘러갔고, 김서방은 창주가 욕심이 났습니다.
아들뿐인 김서방은 창주가 이진사댁 연지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잡아둘 생각으로 둘의 혼사를 서둘렀습니다. 창주와 연지는 회심의 미소 속에 혼인을 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합방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창주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방을 엿보지 말기를 신신당부 했습니다. 첫날 밤 문 창호지를 뚫어 눈을 갖다 대고 엿보기를 하는 것이 그 부부의 백년해로를 비는 미풍이었다고 합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여름밤은 짧고 100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오랜 그리움에 오히려 머쓱하여 앉은 창주와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숙인 연지의 가녀린 어깨 떨림... 운명의 시간은 촛불의 일렁임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마주친 눈길... 그들의 그리움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몰래 담을 너머 들어와 창호지를 뚫었습니다. 커다란 수호랑이가 연지아가씨 몸에 엉겨붙어있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놀란 아이들은 온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합방의 꿈은 깨어지고 결국 수호랑이는 인간들에게 잡혀 끌려가 처참하게 가죽을 벗기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날부터 미치다시피한 연지 아가씨는 뒷산 절벽 위 창주가 호랑이로 살았던 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오르면 창주가 있을 것 같은, 그를 만나겠다는 갈망으로 호랑이의 부르는 듯한 울부짖음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무릎이 깨지고 손톱이 빠지고 피가 맺히다 못해 줄줄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오르고 오르다가, 끝내 지쳐 다 오르지 못하고 절벽아래 연못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한(恨)은 씨로 맺혀, 싹이 트고 덩굴을 뻗더니 절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주홍핏빛 능소화를 피웠습니다. 절벽에 핀 애절한 능소화 꽃 한 송이가 연못에 비쳐 물꽃을 피우면 아이는 그 주홍빛 꽃에 홀려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아이가 죽은 다음날, 능소화 위로 죽은 아이의 키만큼 자리에 새로운 꽃송이가 피어나고 아이가 또 하나 죽으면 또 한 송이가 피어 호랑이가 살던 높고 험한 굴을 향해 능소화가 아이의 키를 밟고 오르듯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연못을 언제부터인가 연지못이라 부르게 되었고, 해마다 열린 꽃송이만큼 아이들은 연지못에 빠져죽는다고 합니다.
소설 '능소화’는 안동에서 발견된 400여년 전의 이응태씨 부인의 애틋한 사랑의 ‘원이 엄마의 편지’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여 편지 원문내용에는 한 마디도 없는 ‘능소화 곱게 피던 날 만나 능소화 만발한 여름날 이별한 응태와 여늬’로 승화된다.
능 소 화 연가 – 이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 자꾸 올라 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 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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