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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산시문집(茶山時文集)시(詩38) 제2권

산술 2013. 1. 9. 12:41

시(詩)

 

역참 누각은 사방이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남쪽에 그중에서도 가장 놓은 구봉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매우 견디기 어려워 장난삼아 절구 한 수를 지어 함께 있던 손님에게 보였다[驛樓四面皆山也 其南有九峯山最高 當前擁寒 始來時頗不堪 戲作絶句 示伴客云]

 

겹겹 산이 둘러싸 시름 얼굴 죄어드니 / 重巒匼帀逼愁顔
답답하기 언제나 옹기 속에 앉았는 듯 / 鬱鬱常如坐甕間
어찌하면
번쾌처럼 사나운 자 얻어서 / 安得猛如樊噲者
군화발로 구봉산을 걷어차 엎어볼꼬 / 靴尖踢倒九峯山

[주D-001]번쾌 : 한(漢) 나라 패현(沛縣) 사람으로 유방(劉邦)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많이 세웠다. 홍문(鴻門)의 모임에서 항우(項羽)가 유방을 죽이려는 계략을 꾸몄을 때 문지기의 저지를 뚫고 들어가 항우를 맹렬히 꾸짖고 유방을 탈출시켰다. 《史記 卷九十四 樊噲傳》

 

요즘 마음을 조용하고 맑게 가지는 시간이 차츰 오래되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늘 산기운이 자꾸 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따금 앞서의 시를 읊을 때마다 부끄럽기 그지없어 마침내 다시 절구 두 수를 지어 구봉산에게 사과하였다[近日習靜漸久 每日夕覺山氣益佳時誦此詩 不勝愧怍 遂更作二絶句 以謝九峯山云]

 

아침마다 맑은 기운 얼굴 펴기 충분하니 / 朝朝爽氣足怡顔
번화한 도회지에 있음보다 낫고말고 / 勝在芬華市陌間
어찌하면
원량 같은 담박한 자 얻어서 / 安得澹如元亮者
태연히 구봉산을 마주 대해 앉아볼꼬 / 悠然坐對九峯山
가슴 펴면 얼굴 펴지 못할 곳이 없거니 / 寬懷無處不開顔
넓은 바다 높은 하늘 이곳에도 있고말고 / 海闊天空亦此間
만물은 절로 나고 또한 절로 있는 건데 / 萬物自生還自在
한림은 어찌 굳이 군산을 깎으려 했나 / 翰林何必剗君山

[주D-001]원량 :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살면서 시와 술로 낙을 삼았던 진(晉) 나라 도잠(陶潛)의 자이다.
[주D-002]한림은……깎으려 했나 : 자연으로 생겨난 산을 굳이 없앨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군산은 중국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에 있는 산 이름이다. 한림은 당 현종(唐玄宗) 때 공봉한림(供奉翰林)을 지낸 적이 있는 이백(李白)을 가리킨 듯하나, 이백은 군산을 아름다운 그림 같다고 찬미한 시만 있을 뿐 깎아버리고 싶다고 말한 근거는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더 많은 연구가 요망되는 문제이다.

 

고시를 모방하여 지은 시[擬古] 2수

 

서해엔 서왕모의 반도가 있고 / 西海有蟠桃
동해엔 신선 과일
화조가 있어 / 東海有火棗
먹으면 환골탈태 해탈을 하여 / 食之得蛻化
영원토록 늙지를 않는다 하니 / 永世不得老
뭇사람 너도나도 그걸 추구해 / 衆人爭欣慕
미련없이 먼 길을 떠나가지만 / 望望出遠道
나는 홀로 내 집을 굳게 지키고 / 我獨守我家
처자와 오손도손 생을 꾸리리 / 且與妻子好
밭에는 누른 기장 씨를 뿌리고 / 山田種黃梁
무논에는 붉은 벼 모종을 하여 / 水田種紅稻
부지런히 그 싹을 매고 가꾸면 / 勤力芸其苗
가뭄이든 장마든 그 무슨 상관 / 不問熯與潦
어지간히 추수를 기대할 만해 / 庶幾望有秋
내 목숨 보전하긴 무난할 거야 / 使我性命保
휘황찬란 비단옷 몸에 걸치고 / 燁然衣錦衣
말 타고 도성 길을 치달리다가 / 乘馬馳雲衢
말을 내려 대궐문 들어가서는 / 下馬入君門
공손히 궁중에서 임금 모시면 / 冉冉庭中趨
그 어찌 통쾌하지 않으랴만은 / 豈不一快意
자칫하면 후환이 생기기 마련 / 或者有後虞
차라리 우선 잠깐 물러나와서 / 不如且暫退
못나고 어리석음 지킴만 못해 / 養拙守其愚
차분하고 조용해 하는 일 없고 / 寧靜無所營
순박하고 성실해 욕심 없다면 / 澹泊無所須
세상길 제아무리 비좁다 해도 / 世途雖局促
썩은 선비 하나야 용납을 하리 / 庶容一腐儒
그래도 만약 서로 용서 않으면 / 若復不相恕
운명이라 그 또한 즐거워해야 / 命也亦樂夫

[주D-001]반도 : 신선이 먹는다는 과일.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 한다.
[주D-002]화조 : 역시 신선이 먹는다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하늘을 날아다닌다 한다.

 

이날 날씨가 맑고 따스하여 해질 무렵에 손님 한 사람과 말을 타고 금계를 지나가면서 서남쪽을 바라보니 눈에 덮인 여러 산봉우리가 하늘 높이 솟아 있으므로 서로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어곡에 이르러 은사 채씨를 찾아보고 돌아왔다[是日風日暄暢 晩與一客騎馬度錦溪 望西南 諸峯雪中森秀 相顧甚樂也 至漁谷 訪蔡逸人而還] 12월 18일

 

맑디맑은 시냇물 잔물결이 일어나고 / 溪水粼粼起細波
순한 바람 갠 햇살 봄날씨 흡사하네 / 惠風晴日似春和
바로 땅속 새싹이 꿈틀댄 걸 알겠거니 / 恰知地底萌芽動
이내 가슴 사랑과 어느 것이 더 많을꼬 / 腔內仁端較孰多

삼가 내직으로 전보하라는 명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해질 무렵 금정역을 떠나면서[伏聞內移有命 晩發離金井驛] 12월 23일

 

석양에 말을 타고 관가 문을 나서니 / 夕陽騎馬出官門
관가 버들 하늘하늘 내 고향 흡사하다 / 官柳依依似故園
시냇물 줄기 따라 십 리를 지나오니 / 野水相隨行十里
산골 구름 걷힌 곳에 외론 마을 보이네 / 峽雲初盡見孤村
궁한 삶에 시끄러운 세속 싫은 지 오래이고 / 窮居久厭喧囂俗
영예롭게 불려가니 내쫓은 은혜 더 새로워 / 榮召猶懷放逐恩
황주의 고각소리 그야말로 다정하다 / 鼓角黃州眞有戀
내 이 마음 오로지 소자첨과 논할 따름
/ 玆懷唯與子瞻論

[주D-001]황주의……따름 : 황주는 중국 호북성(湖北省)의 지명이고 고각은 군중에서 사용하는 북과 나팔이다.《蘇東坡詩集 卷二十三 過江夜行武昌山聞黃州鼓角》의 "황주의 고각소리 그 또한 다정하다. 남쪽으로 날 보내 먼 길 아니 마다했네[黃州鼓角亦多情 送我南來不辭遠]"에서 나온 말로, 한때 자리잡고 살았던 곳을 막상 떠나게 되어 못내 아쉽다는 뜻으로 보인다.

 

윤이서가 임금의 특지로 정언이 되었으나 서울에 당도하자마다 체직되어 나를 명례방으로 찾아왔기에 장난삼아 시 한 편을 지었다[尹彝敍以特旨爲正言 旣至京遞職過余于明禮坊 戲爲一篇]

 

다정할손 조복차림 가난한 선비 몰골로 / 憐君袍笏帶儒酸
강남 제비 찾아올 때 죽란정사 그대 왔네 / 燕子來時到竹欄
우연하게 쓸쓸히 홀로 멀리 떠나려다 / 偶爾飄零成獨往
문득 가슴 설레며 이처럼 서로 쳐다보네 / 却能回薄此相看
봄날에 진흙 풀려 돌아갈 길 아득한데 / 春泥漠漠迷歸路
드문드문 흰머리에 한직에서 파직이라 / 霜鬢蕭蕭罷冷官
술 있어 한가한 세월 보내기에 충분하니 / 有酒足銷閑日月
아무쪼록 온갖 꽃이 필 때까지 머무르소 / 直須留至百花闌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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