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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 복효근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헌신 / 복효근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루빈의 컵'이란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흰색과 검정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어느 색에 주의를 집중하느냐에 따라 전경(figure)과 배경(ground)이 바뀔 수 있다는 '전경과 배경의 가역성'을 실험한 그림이랍니다.
흰색에 집중하면 꽃병으로 보이지만 검정색에 집중하면 두 사람이 마주보는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시야에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에 대해 선택적 주의집중(selective attention)을 하게 됩니다. 이때 선택된 지각은 전경이 되고 그렇지 못한 지각은 배경이 되지요. 그러나 이런 선택적 지각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 전경이 된 지각도 다른 이에게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답니다.
"장미의 한복판에/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그 아름다움을 거드는/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네 몫의 축복 뒤에서/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라고 지각하게 되자 배경이었던 안개꽃이 순식간에 전경으로 바뀌어 우리 앞으로 확 다가오지 않나요?
그래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자극들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적으로 지각하여 전경(figure)으로 가역(reversible)시키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답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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