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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필요충분조건으로/ 유안진

산술 2013. 1. 9. 12:28

 

 

 

필요충분조건으로/ 유안진

 

 

지금 눈 오신다고

북촌 친구가 문자를 주었다

빗줄기를 내다보며 나도 답을 쳤는데

금방 또 왔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씻어낼 게 많고

그의 마을에는 덮어 가릴 게 많아서라고

 

- 시집『걸어서 에덴까지』』(문예중앙,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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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바뀌었다. 그동안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이고,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것이 증명되었다. 너는 눈이 온다고 하고 나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보아야 할 것들이 있음을 알았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몰입하면 그 눈이 왜 왔는지, 그 비가 왜 뿌렸는지를 알 수가 없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고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우리들 모두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제 각각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좋아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되 다른 이들의 방식도 있음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의도하지 않은 것들로 인한 상처를 받지 않는다. 

 

 투표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다들 소중한 한 표의 주권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투표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두 후보 모두 비교적 도덕적이고 사심 없는 분이라 생각되어 누가 되어도 일단 그런 면에서는 안심을 했던 터였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직은 대통령의 필요조건이다'라고 말하면 옳은 논법이지만, 정직이 대통령의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과거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직 하나만 갖고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췄다고 말하면 그건 아마 지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과장된 평판일 가능성이 크다. 당선자는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다음은 대학생들이 뽑은 대통령의 자격 TOP15 가운데 일부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5년 내내 이런 대통령을 가진 벅찬 행복에 겨웠으면 좋겠다. 

 

 1.을이다. 최고 권력자 슈퍼 갑(甲)이 아닌 5년 계약직 피고용자 을(乙)로 여기고 약자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2.‘노’라고 말할 친구가 필요하다. 비판과 직언을 서슴지 않을 측근이 반드시 주변에 있어야 한다. 3.전국노래자랑이다. 지역, 이념, 세대, 소득으로 분리된 한국사회의 모든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4.해를 품은 달이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추구하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5.골키퍼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세계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선방하여 팀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6.밀당의 고수다. 연애에서 지나치게 밀어내거나 당기면 실패하는 것처럼 외교, 특히 대북정책에서 당길 때와 밀 때를 정교하게 조합해야 한다. 7.테트리스 고수다. 요철을 잘 맞춰 비치하는 테트리스 게임처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8.단체줄넘기다. 국민들이 줄 안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뛰도록 바깥에서 크게 줄을 돌리고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 9.한국스타일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깊게 인식하고 중국,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침탈 야욕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10.얼굴의 주름이다. 부모 얼굴의 주름이 자식 키우는데 쏟은 역정, 고민을 보여주듯 국민과 나라를 향한 진정성의 고뇌를 갖춘 자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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