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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 최승자
1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한없이 흘러가다 보면
나는 밝은별이 될 수 있을것 같고
별이 바라보는 지구의 불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 하면 푸른콩으로 눈 떠 다시 푸른숨을 쉴 수 있을까
어떻게해야 고질적인 꿈이 자유로운 꿈이 될 수 있을까
2
어머니 어두운 뱃속에서 꿈꾸는
먼 나라의 햇빛 투명한 비명
그러나 짓밟기 잘 하는 아버지의 두 발이
들어와 내 몸에 말뚝 뿌리로 박히고
나는 감긴 철사줄 같은 잠에서 깨어나려 꿈틀거렸다
아버지의 두 발바닥은 운명처럼 견고했다
나는 내 피의 튀어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
잠은 잠 속에서도 싸우고 꿈의 꿈 속에서도 싸웠다
손이 호미가 되고 팔뚝이 낫이 되었다
3
바람 불면 별들이 우루루 지상으로 쏠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밤길을 헤매고
왜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었는가
왜 어느 별은 하얗게 웃으며 피어나고
왜 어느 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가
조용히 나는 묻고 싶었다
인생이 똥이냐 말뚝 뿌리 아버지 인생이 똥이냐 네가 그렇게 가르쳐 줬느냐
낯도 모르는 낯도 모르고 싶은 어느 개뼉다귀가 내 아버지인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살아계신 아버지도 하나님 아버지도 아니다 아니다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4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육체는 아침마다 배고픈 시계 얼굴을 하고
꺼내줘 어머니 세상의 어머니 안되면 개복수술이라도 해줘 말의 창자 속같은 미로를
나는 걸어가고 너를 부르면 푸른이끼들이 고요히 떨어져 내리며 너는 이미떠났다고
대답했다 좁고 캄캄한 길을 나는 기차화통처럼 달렸다 기차보다 앞서가는 기적처럼
달렸다. 어떻게 하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달려야 항구가 있는 바다가 보일까
어디까지 가야 푸른 하늘 베고 누운 바다가 있을까
< 이 時代의 사랑 >
슬펐으나 기뻤으나 / 최승자
슬펐으나 기뻤으나
그래도 할 일이 없어 오른 산(山)
오른 발을 東에 두고 왼발은 西에 두고
굽어 보고 굽어 봐도
슬펐으나 기뻤으나의 그림자들일 뿐
세상은 간 곳 없고 부풀어 오르는 먼지뿐
가을 山 국화꽃 하나 웃길래
오른 발은 西에 두고 왼발은 東에 두어 봐도
발 아래는 여전히 세상살이의 먼지뿐
먼지 자욱한 그 속에서
어디에다 내 집을 지을까
이 꿈도 아닌 저 꿈도 아닌 그 사이에서
이 꿈도 이데올로기요, 저 꿈도 이데올로기인 그 사이에서
어디에다 내 집을 지을까
<물 위에 씌여진> 20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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