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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인생불만백 상회천세우)

산술 2018. 6. 5. 16:53




인생불만백 상회천세우(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인생불만백 상회천세우 (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 ^

백년을 살지도 못 하는 사람이,
늘 천년 어치의 걱정을 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 이렇게 살다 갑시다

중국 한나라 때 악부인 서문행에 나오는 말입니다.
인간은 필요 없는 걱정까지 하는가 하면

사람은 백년을 채 못 살지만...

당장 눈앞에 닥쳐온 걱정거리는 뭔지도 모르고
동분서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人生不滿百.常懷千歲憂

이것이 인간이 지닌 특색이요,
모순이기도 합니다.

인생불만백상회천세우(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행서체

진시황은 그의 후손이 천년만년 오래오래 황제의 자리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인생 불만 백 상회천세우(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그러나 오십 평생을 겨우 산 그가
단 십년 앞의 일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천년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고 했습니다.
당장 밀어닥친 불행이 오히려 다행이 되기도 하고,

좋은글모음 / 사랑 행복 인생 세월

그 다행이 다시 불행의 씨가 되기도 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으로 충분합니다.

품격높은 교양생활한자-2

농사를 짓지 않는 새에게도 먹이를 주는 조물주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나를 위하여 ◑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고 했지요.
조물주는 사람을 아무 의미 없이 함부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찰나 人生

굶어 죽기는 정승하기보다 어렵다고 했으니,
천년 걱정은 물론 까닭 없는 내일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가을의 行步..

불필요한 근심 걱정은 하지 마세요~
좋은일만 감당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벅차니깐요..
모셔온 글
아래 진시황제의 지하궁전 보고 가세요

 

 

그 동안 추측만 했을 뿐 진시황릉은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우물을 파던 농부의 삽끝에서 우연히 '세기의

 발견' 이라 불리는 진시황릉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이 1974년 발견됨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진시황릉원 동쪽 담에서 1km 떨어진 곳에 진시황의 사후를 지키는 친위군단인 병마도용을 수장한

갱도가 긴 어둠의 세월을 걷어내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곧 바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총면적 25,380m2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되었다.

 1호갱의 규모를 보면 길이 210m, 너비 60m, 깊이 4.5~6.5m의 총면적 12,000m2로 본래 이 갱 위에는

회랑식 건축물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병마용갱 전체 도용은 약 6,000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1.86m, 도마용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이며, 갑옷을 입고 무장한 무사의 표정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고 얼굴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2호갱은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 이를 끄는 마용 356건,

기병용 116건, 안마 116건, 보병용 562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전 발굴된 520m2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진시황릉 서북측에서 동마용과 동용이 딸린 대형 동전차가 1대

발견되었다.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이 병마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은 물론, 당시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정작 시황제의 무덤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4면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흙둔덕바로 아래

 지하궁전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진시황릉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로 전체 면적이 60여 만평에 달하고, 지하 4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되어 있으며, 묘역 안팎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쌓아 당시 도읍지인 장안(長安)과 같이 외성곽 길이만도 12㎞에 달한다는 발표다.

 한마디로 진시황릉은 '거대한 묘역도시'인 셈이다.

 

 

일반 황릉과는 달리 황후와 합장하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황후를 합장하지 않고 진시황 단독 묘를 쓴 것은

 당시 ‘황제권력은 한없이 높다’는 ‘황권지고무상관(皇權至高無上觀)’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진시황릉에 대한 발굴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발굴기술로는 원형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 때문에 대대적인 발굴은 미뤄지는 형편이다. 완전한 발굴로

그 실체를 밝히기 까지는 앞으로도 몇 세대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다.

 

 

절대권력자로서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시황제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서 내세(來世)의

 영생을 믿으며 ‘삶과 죽음은 동일하다’는 ‘생사동일관(生死同一觀)’하에 천년, 만년, 영원한 제국을 이루고자

한 진시황! 사후 2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무한권력자의 생사마저 초월코자 했던 그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시황릉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인생불만백 상회천세우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글쓴이 : 미소편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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