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해설

[스크랩] 광주의 어머니 산 무등산, 그 증심사계곡의 아련함

산술 2016. 1. 15. 12:42

 

동창회 산악회의 11월 정기산행이 광주 무등산에서 있었다.

원래 11월 정기산행지는 강진 주작산이다. 주작산은 천하제일 절경의 암릉길에 핀 진달래로 유명한 산이다.

두륜산에서 떨어져 나온 주작산은 봉황의 우측날개라고 하지만 칼을 세워놓은 듯한 암릉들을 타고 넘어가는 재미가

쏠쏠한 산으로 남해바다의 오밀조밀한 섬들 사이로 비치는 일출과 일몰 광경 또한 빼먹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11월 만추의 계절에 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인 주작산은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러운 바위들로 인해 오르내리기가

무척 힘든 산에다가 여성들이 오르기에도 만만치 않은 산이기에 일요일 비 예보로 인해 일찌감치 산행지를 변경했던 것이다.

 

 

 

오늘 산행은 아침부터 만추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 가을비로 인해 참석은 저조했지만

그래도 산을 좋아하고 우중산행의 멋을 아는 친구들은 모두 모였다.

우중산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는 어제 고창 선운산 오랜 산행의 피로가 아직 덜가셨기에

산에 오르기 보다 증심사계곡과 증심사의 깊은 가을을 느껴보기위해 빈 몸으로 아내와 같이 나서게 되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이런 동요가 생각나게 하는 가을비 내리는 아침.

친구들은 모두 바람재로 올라가 버리고 나와 아내는 갑자기 텅 비어버린 가슴을

무엇으론가 채워보고 싶어 무작정 증심사 계곡으로 올라가 본다.

 

 

가을비를 흠뻑 머금은 푸른 이끼도 보고...

 

 

 

비에 젖어 밟는 느낌마저 사라져 버린 낙엽을 한 걸음씩 즈려밟고 올라가면...

 

 

 

                 정열을 불태우는 의재미술관앞 찻집의 단풍나무를 내려다 보고..

 

 

 

친구와 고향을 모두 잃은 해오라기 한 마리가 겨우살이를 시작한 증심사계곡을 들여다 보고...

 

 

 

           그의 비상은 증심사계곡을 저공비행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지만,

           언제나 저 푸르는 창공으로 비상하여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무등산은 조선태조 이성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스승으로 모신 무학대사와 함께 팔도를 돌아다니던 중 무등산에 도착하였다.

'피로 물들인 죄업을 사하여 주시옵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해 주소서'...라고 3일간 기도를 드리고 하산하던 중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세군데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는데, 이에 무학대사가 '기도가 부족하니 3일간 더 기도를 드리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하자 일정에도 없던 3일간을 더 무등산에 머물며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에 임금이 찾아와서 기도를 드려도 어엿삐 봐주지 않았다는 뜻으로 일종의 꽤심죄에 걸려 무악산(武岳山), 서석산(瑞石山)

이라는 명칭을 뺏기고 무등산(無等山)으로 강등되었다는 전설..

 

 

 

그러나 노산 이은상은 무등(無等)이란 유래를 불교의 무유등등(無有等等)이라는 말에서 나왔으며,

그 무유등등은 반야심경의 무등등(無等等)에서 어원을 찾는다고 한다.

이는 부처님은 세간의 모든 중생과 같지 않으므로 ’무등(無等)‘한 것이요,’ ‘무등등’은 ‘부처님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뜻으로 ‘무유등등’은 ‘부처 아래 있는 모든 만인은 평등하다는 의미가 된다.’ 고 한다.

 

무등산에 있는 각 봉우리들인 삼존석, 법화대, 설법대, 능엄대, 의상봉, 비로봉, 반야봉 등 모두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이름이어서

이은상 시인의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두가지 전설에서 시작된 ‘무등산  광주의 진산이자 모산으로 백제 때는 ‘무당산’으로 고려 때는 ‘서석산’으로 조선시대에는

‘무등산’이라 불리었으며,  그 연유는 무등산을 ‘비할 데 가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기에 그렇다고도 하고

반대로 ‘너나 나나 같은 산’이라는 평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의재 미술관 앞을 온통 붉게 물들인 가을비 먹은 단풍잎과

 

 

 

나뭇가지에 매달린 방울없는 종의 아우성을 들으며...

 

 

 

증심사계곡으로의 여행은 계속된다.

 

 

 

오래전 무등산 증심사 계곡은 무허가 주택과 음식점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무등산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무려 37년만인 2009년경 그 많던 무허가 주택과 음식점들이

모두 철거되어 증심사 상가지구로 내려갔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증심사 바로 입구까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약 460여억원을 들여 상가 60동 건물31동 등 

91개의 건물들을 철거 정비하였고 약1만1천평에 달하는 이주단지와 주차장 등을 건설하여 지금은 모두 이주단지로 내려와

멋진 건물들을 세워 영업을 하고 있다.

 

1977년 무허가 건물 철거과정에서 이른바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3년을 끌던 재판은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사형집행으로 막을 내렸지만 중졸에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21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왜 그렇게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는지...자세한 것은 ☞ 무등산 타잔 박흥숙 을 참고  

 

 

 

친구들은 모두 바람재로 올라 이곳 증심사로 하산할 것이고

몇몇 특별한 친구들은 한걸음 더 나가서 중머리재로 돌아올 것이다.

나와 아내는 증심사계곡을 더 탐방해 보기로 하고 증심사를 거쳐 약사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증심사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부러진 나무가 교묘하게 다리를 만들어 계곡을 이어주고 있고...

 

 

 

                낙엽은 돌계단에 수북히 쌓여 사람의 발길을 이어준다.

 

 

 

약사사로 올라가는 곳에 만난 숲과의 대화에서...

 

 

 

이 가을  울긋불긋한 단풍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진 운치있는 단풍을 보았으니...

 

 

 

그것이 바로 가을비 머금은 단풍이라고 한다.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까지가 나뭇잎인지 모르는 자그마한 소로는 끊임없는 세월이 흐르고...

 

 

 

여유로움속에서도 바쁜 일상은 늘 같은 세월을 살아간다.

 

 

 

난 이런 수직선이 좋다.

가늘지만 모이면 힘이 있는 수직선의 집합체..

 

 

 

참으로 사색하기 좋은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수평선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면 수직선은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해 준다.

 

 

 

                깊은 사색을 통해 늘상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을 더욱더 곧추 세우고,

                수직의 미학으로 마음을 더욱더 정갈하게 다듬어 본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도 이제 가물가물 그 기억을 더듬어 보는 지금...

 

 

 

의재 미술관앞 찻집의 단풍은 아침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소로 우릴 반기고 있다.

어서 오세요~~반가워요^^ 라고

 

 

 

점심무렵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어....

무등산 계곡의 만추를 느껴보기 위해 찾아오는 수 많은 도시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마음과 각오를 안고 다시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

 

 

 

그곳은 바로 광주 무등산 증심사 계곡이었다...

 

 

     (글 : 포토뉴스 코리아 simpro)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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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impro의 반 백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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