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오기 전,
이십 칠년을 살았던 진북동 우리 집에는
우물가에 배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배나무도 아마 내 나이쯤 되었을 터인데
심하게 가지치기를 한 뒤에도,
시원한 물이 줄줄 흐르는 맛좋은 놈들을
해마다 열댓 개씩은 달고 지냈다.
그 배나무가 피워내던 하이얀 배꽃이
달빛과 어우러져 내는 정한은
아직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다 알지 못했을 나에게까지
어찌나 은근하면서도 절절하였는지 고려조의 충신이었던
`이조년`의 시조 한 구절을 읊조리게 하였던 것인데,
이 밤 갑자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하는
시조가 내 맘을 사로잡는구나.
때로는 감성이 들끓어서,
봄감기 앓는 아낙의 한숨이 높은 대관령도 넘을 기세더니
사방에 꽃망울 터뜨리는 소리 자자함에
그 동안 잊고 지내온 내 안의 깊은 심연에서 온갖
감정의 끄나불들이 줄줄이 엮여져 밖으로 튀어 오른다.
꽃! 이라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빨강이나 분홍이나
곱디 고운 빛깔들을 제치고서
하얀 배꽃이 먼저 생각나는 까닭은
아마도 병이라 부를만큼 다정이 사무친 탓일꺼나,
달빛 쏟아지는 밤에 잠못 이루게 하던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더란 말이냐?......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가슴앓게 하는 늦은 봄감기말고
자식걱정 남편걱정 부모형제걱정 말고 그대들을
잠못 이루게 하는 무언가가 있거들랑
그 또한 복이라 여기고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편지를 보내시라.
때로는 실체가 없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나 느꺼움의 뿌리가 더 깊고,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갈구와 원념이 우리를
더 깊고 내밀한 골짜기로 안내하나니,
이 밤 그대들도
소복입은 여인인듯 고즈넉하게 피어 있는
배꽃 그윽한 뜨락으로
내려 서시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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