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도록 푸른 하늘은 겨울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 높은 곳부터 내려오는 기상이 땅에서는 서릿발로 피어난다. 일상에서 돌보지 못한 게 있다면 그 길에서 보라. 겨울 산이 품은 작은 절집, 산청의 겨울은 너무 맑아 혹독하다.
겨울 산사로 가는 길, 첫 목적지인 정취암으로 가기 전에 산청의 북동쪽에 우뚝 서서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 보고 있는 황매산을 들렀다.
황매산 아래 신촌마을과 만암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늘을 바라보며 농사짓던 시절, 한 해에 한 단씩 산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며 일궈 논을 만들었다.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그 골짜기 다랭이 논이 황매산 기슭에 펼쳐졌다.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저 봉우리가 정상인가 보다. 해발 1108미터, 우리는 지금 그 품으로 들어간다. 황매산에서 여행자를 처음 반기는 것은 영화주제공원이다. 단적비연수, 천군, 바람의 나라, 주몽, 태왕사신기 등 영화와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촬영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약 9900㎡(3000평)의 공간에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재현한 세트가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세트장에서 1킬로미터 조금 넘는 거리를 걸으면 황매산 정상이다. 정상에 이르기 전에 만난 황매평원은 정상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해발 1000미터에 펼쳐진 평원, 그곳에는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풀들도 바람 따라 쓰러지고 나부낀다. 봄이면 철쭉으로 능선이 붉게 물드는 이곳에 겨울 억새가 누렇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구름에 가린다. 구름 사이로 굽이치는 산줄기들이 마음에 박힌다.
절벽에 핀 연꽃, 정취암
황매산을 내려와 절벽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 암자, 정취암으로 향했다. 정취암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도로가 잘 나 있었다. 도로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산길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도로로 오간다.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암자가 절벽 위에 세워졌다. 그 암자 작은 마당에 서서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밀려오는 희미한 산줄기의 물결을 본다. 산이 바다 같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산줄기가 점점 가까이 오면서 그 형체를 드러낸다.
바람이 절벽 저 아래서 불어와 풍경을 울린다. 암자 위에 있는 바위 절벽으로 올라갔다. 절벽 바위 아래 암자가 있다. 마당에서 보았던 그 풍경이 암자 지붕에 걸쳐 있다. 암자 앞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그 옛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 따라붙는 ‘뜰 앞의 잣나무’렸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암자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아찔한 실체였을까.
- ▲ 내원사 삼층석탑. 탑이 오래되고 훼손됐지만 강인해 보인다.
정취암은 신라 문무왕 6년에 의상대사가 지은 절이다. 정취암 부근에는 율곡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은 원효대사가 지었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 사람이었고 원효대사가 속세의 나이는 더 많았다. 원효대사는 율곡사에 있으면서 보리죽을 먹으며 정진하고 있었는데 의상대사는 하늘에서 내려다 주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루는 원효대사가 정취암으로 놀러 갔다. 점심때가 되자 원효대사는 “오늘은 나도 천공(하늘에서 내려다 주는 음식)으로 점심공양을 할 수 있겠네”라고 하며 음식을 기다리는 데 때가 다 지나도 천공을 내려다 주는 선녀들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원효는 초연이 일어나 율곡사로 떠났다. 원효대사가 자리를 뜨자 선녀들이 천공을 가지고 의상대사가 있는 정취암으로 내려왔다. 의상대사가 “왜 이제야 오냐”고 묻자 선녀들은 “원효대사를 옹위하는 팔부신장이 길을 막고 있어 지금 오게 됐다”고 대답했다. 이에 자신의 도량이 원효대사에 미치지 못함을 깨달은 의상대사는 그날부터 천공을 받지 않고 더 깊은 정진 수양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야교에 울리는 자연의 합주곡
정취암에서 내려와 1006번 도로를 타고 단계 쪽으로 간다. 길은 20번 도로와 만나고 신안면에서 단성교를 건너 남사예담촌 앞을 지난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지리산을 벗 삼아 살던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를 지나는데 길가에 펼쳐 놓은 빨간 곶감이 눈에 띄었다. 투명한 겨울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그 빛깔도 탐스럽다.
어릴 적에 곶감은 귀했다. 1년에 한 번, 설날 차례상에서만 볼 수 있었다. 차례가 끝나기만 기다렸다가 상을 물리면 ‘방울쥐’처럼 쪼르륵 달려가 곶감을 먹었다. 쫄깃한 껍질 속에 감추어진 달달한 맛은 씹을수록 우러났다. 한입 가득 물고 오물오물 씹으면서도 더 많이 먹으려고 양손에 하나씩 곶감을 들고 한겨울 마당을 헤집고 다녔다.
- ▲ 황매산 영화 주제공원. 뒷 산이 황매산 정상이다. 1000미터가 넘는 곳이라 바람이 많이 분다.
옛 생각을 하는 동안 차는 지리산 내원사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지리산 계곡을 비추는 영롱한 햇살을 따라 내원사로 간다. 계곡을 건너야 절로 들어갈 수 있다. 그 계곡에 놓인 다리가 반야교다. 소박하고 아담한 다리가 계곡의 허공을 가로질러 길과 절을 잇는다.
내원사는 작은 절이다. 대웅전도 아담하다. 절집도 몇 채 안 된다. 마당만 넓어 허허롭지만 삼층석탑과 석남암수석조비로자나불상 앞에 서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깨지고 훼손된 흔적이 많은 삼층석탑이지만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석남암수석조비로자나불상은 어깨며 팔 무릎의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졌으며 오랜 세월 마모돼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온화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돌로 만든 두 개의 보물을 보고 돌아가는 길, 다시 반야교 앞에 섰다. 반야교 중간에 서서 계곡을 향해 서서 두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순간 소리가 더 잘 들린다.
바람이 숲을 지나며 내는 소리, 마른 풀 서걱거리는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어울려 자연의 합주곡을 만들어 낸다.
지리산 품에 안긴 1500년 고찰 대원사
내원사에서 나와 59번 도로를 타고 북으로 달린다. 대원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대원사계곡을 따라간다. 길 오른쪽에 평촌마을이 있고 길은 한길로 이어져 계곡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좌우로 600미터 이상의 봉우리들이 솟아 이어져 지리산 더 높은 능선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니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이 더 깊어 보인다.
- ▲ (왼쪽) 산청의 특산물 중 하나인 곶감. 햇볕에 널어 놓고 파는 곶감인데,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오른쪽) 지리산 내원사. 절로 들어가는 다리, 반야교.
소막골야영장과 대원사야영장을 차례로 지나면 대원교가 나오고 계곡은 대원사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른다. 절 앞 계곡 너럭바위에 앉아 계곡의 푸르른 공기를 큰 호흡으로 들이마시며 잠깐 쉬어간다. 계곡의 맑은 물이 푸른 숲을 담고 있어 푸르게 보인다. 크고 작은 바위와 너럭바위 위를 흐르는 물은 맑다 못해 시리도록 투명하다.
대원사는 1000년하고도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리산 유평리 계곡을 지키고 있다.
대원사는 548년(진흥왕 9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당시에는 이름을 평원사라 하였다.
그 뒤 1000여 년 동안 폐사되었던 것을 1685년(조선 숙종 11년)에 운권선사가 문도들과 함께 절을 짓고 대원암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서쪽에는 조사영당을 보수하고 동쪽에는 방장실과 강당을 건립하여 대원사라 개칭했다.
대원사에는 보물이 하나 있는데 1992년에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된 대원사 다층석탑이 그것이다. 646년 선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탑을 건립했다. 어른 키의 5~6배나 될 정도로 높다. 두 개의 기단에 8층으로 탑신을 세웠는데 그 모양이 날렵하게 하늘로 솟아오른 모양이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탑에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 퍼진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대원사 계곡은 대원사를 지나 7~8킬로미터는 더 올라간다. 원래 이 계곡의 이름은 유평계곡인데 대원사가 유명하여 계곡 이름도 대원사 계곡으로 바뀌었다.
대원사 계곡과 대원사는 지금이야 길이 잘 닦여 길 따라 차를 타고도 갈 수 있어 산이 깊은 줄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리산 여러 봉우리와 능선에 묻혀 세상이야기 하나 들리지 않는 오지였을 것이다.
- ▲ (왼쪽)남사예담촌 이씨 고가 가는 길. 나무 두 그루가 저렇게 엉켜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오른쪽) 대원사 절집 뒤 장독대. 정갈하고 가지런한 장독대 항아리가 정겹다.
이런 형국의 지형이니 길 없는 시절 이곳은 은둔자가 찾아들기 좋은 곳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의 기치가 외세의 개입으로 좌절되자 혁명의 동지들이 대원사 계곡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항일 의병의 은신처였다. 이어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이 활동했던 때에는 낮에는 국군이 이 계곡을 점령했고 밤에는 빨치산의 세상이 되었다. 이후 1960년대에는 화전 일구며 목숨을 이어갔던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질곡의 역사에 민족의 운명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과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 그리고 사상의 대립이 낳은 슬픈 역사의 희생자들, 그들 모두의 영혼들이 남아 있어 대원사 계곡의 산천은 더 푸르고 시리도록 맑게 빛나는 게 아닐까.
여|행|길|라|잡|이
가는 길
● 황매산(황매산 영화주제공원): 대전겾肉·고속도로 산청IC - 산청읍내 - 차황면·황매산방향 59번 도로 - 차황면 - 하나로마트 차황점 지나 - 황매산(황매산 영화주제공원) 방향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길 왼쪽에 황매산 영화주제공원 입구 아치 조형물 - 아치 조형물 통과해서 약 6킬로미터 정도 더 가면 영화 주제공원·황매산
● 황매산에서 정취암 가는 길: 황매산에서 다시 차황면으로 나와 1006번 도로 철수리·율현리 방향 - 60번 도로로 접어들어 조금만 가다 보면 정취암 이정표 - 정취암
● 정취암에서 내원사 가는 길: 정취암에서 나와 다시 1006번 도로를 타야 함 - 1006번 도로 신등면 단계리 지나 - 신안면 - 단성교 건너 - 단성면 - 20번 도로 - 남사예담촌 - 시천면 소재지 - 59번 도로 만나면 삼장면 방향 우회전 - 내원사
● 내원사에서 대원사 가는 길: 내원사 - 59번 도로 북쪽 방향 - 대원사(대원사계곡)
숙박
산청 읍내에 모텔이 몇 군데 있다. 황매산 아래 신촌마을, 만암마을과 남사예담촌에 민박집이 있다. 정취암 부근에는 숙박할 곳이 없다.
산청 먹을거리
산청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산나물 약초가 많다. 산청한방휴양관광지 내 ‘약초와 버섯골 식당’에 가면 산나물과 약초 버섯 등으로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버섯과 약간의 약초 등을 넣고 약초로 우린 육수로 끓여내는 ‘약초버섯매운탕’과 약초로 우린 육수에 각종 약초와 버섯, 소고기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약초와 버섯전골(샤브샤브)’ 등이 주요 요리다.
주변여행지
정취암에서 내려와 1006번 도로를 타고 단계 쪽으로 간다. 길은 20번 도로와 만나고 신안면에서 단성교를 건너가다 보면 남사예담촌이 나온다. 이곳은 한옥과 돌담길의 운치가 살아 있는 마을이다. 민속촌처럼 일부러 꾸며 놓은 옛 마을이 아니다. 집집마다 다 사람이 살고 있다. 출입이 가능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사양정사’, ‘사효재’ 등이 유명하다. 특히 ‘사효재’는 아버지를 향해 날아드는 칼을 몸으로 막아 아버지를 살렸다는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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