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에서 발원한 증암천은 광주호로 흘러든 뒤 영산강으로 합수된다. 자미탄(紫薇灘)이라 부를 정도로 배롱나무 꽃 만발한 풍경이 아름답던 증암천은 담양군과 광주광역시의 경계가 되고, 증암천 곳곳에는 조선 시대 누정이 여럿 남았다. 담양군에 식영정과 소쇄원이 있다면, 광주광역시에는 환벽당과 취가정이 있다.
환벽당 전경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가 지은 정자로, 증암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았다. 김윤제는 조선 중종 때 나주목사로 있다가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은거했다.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을 머무르며 학문을 연마한 곳이기도 하다.
해설사의 판소리 한 곡조가 숲에 울려퍼진다.
환벽당에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날 때 이야기가 전한다. 하루는 김윤제가 증암천 용소에서 용이 노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 증암천으로 가보니 한 소년이 멱을 감더란다. 정철은 순천에 내려간 형 정소를 만나러 가는 길에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상서로운 꿈이라 여긴 김윤제는 정철과 외손녀를 맺어주었다.
월봉서원의 강학당인 빙월당에서 잠시 쉬고 있다.
정철은 아버지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산하자, 담양 지실마을로 내려온 참이었다. 정철은 이곳에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익히고, 담양과 광주의 누정 주인들과 교유했다.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정철이 담양에서 문장과 학식이 뛰어난 이들과 교유하며 쓴 글이다. <성산별곡>에는 환벽당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환벽당 대청에 앉아 대금연주를 듣고 있다.
환벽당에서는 주말마다 풍류 체험이 열린다. 주말과 공휴일에 운행하는 빛고을남도투어 담양·장성 코스에 포함되는 행사로, 광주송정역과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승차하면 장성 축령산자연휴양림, 광주 월봉서원, 담양 죽녹원과 소쇄원, 광주 환벽당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차례로 돌아본다. 환벽당 풍류 체험은 오후 2시 30분에 진행된다. 시간에 맞춰 환벽당을 찾으면 빛고을남도투어 탑승자가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다.
환벽당에 오르는 여행객들
운치 있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언덕 위에 앉은 환벽당에 닿는다.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방과 대청, 툇마루가 있다. 정면 방문과 들어열개인 측면 창을 활짝 연다. 정자는 삼면이 트여 방이 무대가 되고, 대청은 객석이 된다. 환벽당 풍류 체험은 가슴을 파고드는 대금 연주, 걸쭉한 판소리, 은근한 차향이 어우러진다.
환벽당의 방은 무대, 대청은 객석이다.
먼저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대금 연주자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대금을 연주한다. 심금을 울리는 대금 소리가 환벽당 너머 증암천까지 울려 퍼진다. 지나던 여행자도 대금 연주에 빠져든다. 이어 명창이 전라도 광주에 왔으니 빠질 수 없는 노래라며 '호남가'를 한 곡조 뽑는다. 앉아서 호남을 유람하는 듯하다. '춘향가' 한 대목이 이어졌고, 앙코르 소리와 함께 명창이 '쑥대머리'로 화답했다. 마지막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진도아리랑'으로 명창과 관람객이 하나가 된다. 명창이 선창하면 마루에 앉은 관람객에게 마이크가 돌아간다. 미리 나눠준 '진도아리랑'을 한 소절씩 부르거나 직접 작사한 노래로 불러본다.
[왼쪽/오른쪽]명창의 판소리 / 환벽당에서의 다도체험과 담소
8월 20일부터 새로운 풍류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환벽당과 담양의 식영정, 소쇄원이 연계해 전통 공연과 체험을 하는 '풍류 남도 나들이'다. 환벽당에서 전통 무예 체험과 청년 인문 교육 프로그램, 식영정에서 선비 체험과 나의 뿌리를 찾는 보학 교육, 소쇄원에서 풍류 정원 달빛 공연이 펼쳐진다.
김윤제가 정철을 만난 증암천의 용소에서 여행객이 탁족을 즐기고 있다.
환벽당과 이웃한 취가정은 '취해서 노래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 독특한 이름은 꿈에 나온 '취시가'에서 유래한다. 정철의 제자인 석주 권필이 임진왜란 때 무고로 죽은 의병장 김덕령이 '취시가'를 부르는 꿈을 꾸었다. 권필은 "지난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리오…"라고 화답했다. 김덕령의 후손 김만식이 나중에 권필의 꿈 이야기를 듣고 조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취가정을 지었다. 아쉽게도 취가정은 지금 복원 공사 중이다.
왕버들의 400년이 넘은 세월의 흔적
충효동은 의병장 김덕령의 고향이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입구에 노거수 세 그루가 나란하다. 천연기념물 539호로 지정된 광주 충효동 왕버들군이다. 김덕령이 태어날 때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김덕령나무'라고도 한다. 김덕령은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려고 출정했다가 난이 평정되어 돌아오던 중, 무고를 당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결국 혹독한 고문 끝에 29세 나이로 옥사한다.
왕버들군의 그늘은 훌륭한 휴식공간을 만들어준다.
왕버들 옆에 충장공 김덕령 충효리비가 있는데, 정조가 김덕령의 이야기를 듣고 윤음(지금의 법령)으로 만들어 세운 비석이다. 김덕령의 안타까운 죽음과 추월산에서 순절한 그의 부인,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먼저 죽은 형 김덕홍 등의 충·효·열을 본받고 이들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을 충효리라 명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이곳에는 소나무 한 그루, 매화나무 한 그루, 왕버들 다섯 그루[一松一梅五柳]를 심었다는데, 왕버들 세 그루가 살아남았다. 뒤틀린 왕버들의 줄기가 40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푸르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면 왕버들 그늘이 훌륭한 피서지가 된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쉬거나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왕버들군락에 조성된 생태탐방로
충효동 왕버들군 건너편이 광주호 호수생태원이다. 호숫가 생태탐방로에서 햇빛을 피해 산책하거나 휴식을 즐기기 좋다. 생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습지대 위로 목재 데크를 설치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아름답고, 호숫가 습지대에 40년 된 왕버들 수십 그루가 있다. 광주댐을 건설하고 주변이 호수가 된 후, 충효동 왕버들군의 씨앗이 날아가 자연적으로 싹을 틔웠다. 광주호 호수생태원에서는 둘째 토요일(오후 6시)에 '호수음악회'를 연다. 달에 포함된 24절기를 테마로 현대적인 풍류를 선보이는 음악회다.
[왼쪽/오른쪽]풍암정 전경 / 풍암정 가는 길의 단풍나무숲길
무등산 자락을 따라 올라가면 신선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내려왔을 듯한 정자가 있다. 김덕령의 동생 김덕보가 지은 풍암정이다. 김덕보는 맏형 김덕홍이 금산싸움에서 죽고 작은형 김덕령마저 무고로 목숨을 잃자, 세상을 등지고 무등산 자락에 은거했다. 원효계곡의 커다란 바위 사이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자 옆에는 커다란 전나무 한 그루가 시립하듯이 있고, 아래로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흐른다. 원효계곡은 여름이면 사람으로 붐빈다. 정자에서 책을 읽거나 바위에 앉아 탁족을 즐기면 한여름 풍류로 더할 나위 없다.
금곡마을의 무등산수박<사진제공·광주광역시>
풍암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무등산수박마을과 광주 충효동 요지(사적 141호)를 차례로 만난다. 무등산수박마을은 이 일대에서 재배하는 무등산 수박의 산지다. 껍질이 두껍고, 겉에 줄무늬가 없으며, 최대 20kg이 넘을 정도로 큰 수박이다. 8월 말쯤부터 판매한다니 꼭 한 번 맛보자.
[왼쪽/오른쪽]월봉서원 아래의 다시카페 / 선비의 하루 체험에서 숭덕사에 배향하는 체험객들
선비의 풍류를 직접 체험하는 곳도 있다. 광주 서북쪽 끝에 위치한 월봉서원이다. 조선 선조 때 문신인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리는 곳이다. 체험 프로그램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꼬마철학자상상학교', 선비의 일상을 체험하는 '선비의 하루', 어른 중심의 '살롱 드 월봉' 등이 있다.
월봉서원을 오르는 선비의하루 체험객
선비의 풍류를 즐기는 프로그램은 '선비의 하루'다. 서원이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에 매서운 규율을 떠올리지만, 월봉서원에서는 편견일 뿐이다. 서원의 사당 공간은 서원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곳이라 웬만하면 개방하지 않는데, 월봉서원은 체험을 위해 숭덕사를 열 정도다.
월봉서원에서 유생복을 입고 있다.
'선비의 하루'는 유생복을 입고 숭덕사에 배례하는 것으로 시작해 철학자의 길 산책, 전통 놀이를 즐기는 놀이마당, 족자 체험, 다담 등을 진행한다. 유생복이 어색해도 선비의 모습 그대로다. 발길을 천천히 옮겨 숭덕사에 오르면 사당과 제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배례를 올린다. 철학자의 길은 월봉서원에서 기대승 묘소까지 이어진다. 솔숲이 아름다워 천천히 걷는 느낌이 제법 좋다. 해설사의 판소리 한 소절이 숲 속을 쩌렁쩌렁 울리는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운이 제법 길다.
월봉서원의 철학자의 길을 걷는 체험객들
월봉서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마을과 서원이 연계한 축제 '월봉유랑'이 펼쳐진다. 음악과 체험, 공연이 어우러지는 다시(茶時)카페도 월봉서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당일 여행 코스>
환벽당→취가정→광주 충효동 왕버들군→광주호 호수생태원→풍암정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풍암정→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광주 충효동 왕버들군→취가정→환벽당→광주호 호수생태원→대인야시장(토요일)
둘째 날 / 증심사→의재미술관→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월봉서원→귀가
여행정보
관련 웹사이트 주소
- 광주광역시 문화관광포털 utour.gwangju.go.kr
- 월봉서원 www.wolbong.org
- 무등산수박마을 moodeungsan.invil.org
문의전화
- 광주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62)613-3621
- 취가정(무등산자락길잡이협동조합) 062)265-1230
- 월봉서원 062)960-8272
- 광주호 호수생태원 062)613-7891
- 무등산수박마을 062)510-1465
대중교통 정보
-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24회(05:20~22:15) 운행, 약 1시간 5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00여 회(05:30~다음 날 02:00) 운행, 약 3시간 20분 소요.
*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www.usquare.co.kr - [비행기] 서울-광주, 하루 3회(09:40, 13:00, 17:50) 운항, 약 50분 소요.
* 문의 : 김포국제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impo 광주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wangju
자가운전 정보
- 호남고속도로 창평 IC→광주 방면 우회전→고서교차로 소쇄원 방면 가사문학로 좌회전→지곡리삼거리 우회전, 충효교 지나자마자 우회전→환벽당
숙박 정보
- 별밤게스트하우스 : 북구 경양로147번길, 062)531-3779(굿스테이)
- 반디민박(무등산반디마을) : 북구 평촌길, 062)266-2287
- 히딩크관광호텔 : 동구 서석로10번길, 062)227-8500
- 라마다플라자광주호텔 : 서구 상무자유로, 062)717-7000
식당 정보
- 엄마손맛집 : 애호박찌개, 북구 충효샘길, 062)431-5237
- 동산가든 : 닭 코스 요리, 북구 송강로, 062)266-9999
- 박승자도넛 : 도넛, 북구 충효샘길, 062)262-1191
- 이화정 : 퓨전 한정식, 북구 하서로672번길, 062)574-8220
- 호화정 : 추어탕, 광산구 용진로, 062)944-7222
- 절라도 : 떡갈비, 담양군 남면 지실길, 061)381-4744
- 수려재 : 한정식,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061)382-1203
주변볼거리
-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무등산옛길, 의재미술관, 포충사, 대인야시장
글, 사진 : 문일식(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6년 7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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