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삶의 여유

[스크랩] 심장이 아프다/김남조

산술 2013. 8. 12. 14:44

 

심장이 아프다/김남조

“내가 아프다”고 심장이 말했으나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그 음성 아슴했다
한참 후일에
“내가 아프다 아주 많이”라고
심장이 말할 때
고요가 성숙되었기에
이를 알아들었다

심장이 말한다
교향곡의 음표들처럼
한 곡의 장중한 음악 안에
심장은
화살에 꿰뚫린 아픔으로 녹아들어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이 된다고
그러나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린다고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
 

원래 심장이 아프다는 말은 ‘heartbreak’처럼 비통과 비탄의 정서를 함의하는 표현이다. 선생은 육신의 아픔과 마음의 아픔을 ’심장‘이라는 통합적 어휘로 노래한다. 이때 아픈 것은 일차적으로는 ‘심장心臟’ 이지만, 그 아픔은 매우 ‘심장深長’ 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심장이 스스로 아프다고 말했지만, 선생은 한때 그것이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아슴푸레하게 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한참 후, 심장이 많이 아프다고 할 때는 고요가 성숙되어 이를 알아듣게 된다. 이때 ‘고요의 성숙’이란 다른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이 된다. 그래서 교향곡 음표처럼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을 가진 음악을 우리는 고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을 예물로 바치는 삶은 아프고 아플 뿐이니 선생은 그 아픔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견딜 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생은 삶이라는 “이 준엄한 예배당에서 단 한 번도/경건하지 않았음을”(「숨 쉬는 공부」) 고백하지만, 어쩌면 김남조 선생은 가장 경건하게 이 통증과 견딤의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통증은 불가피한 ‘치유’의 시간을 수반한다. 그래서 선생은 영험한 약처럼 오는 ‘치유의 가을’을 통해 “줄을 서 기다리던 모든 다친 이를/고쳐주면서” 오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 끝에 “기다리던 그 사람도”(「치유의 가을」) 오지 않는가. 이제 전후戰後의 한 젊은 여성 시인이 ‘서정’과 ‘신앙’으로 쌓아올린 한 생애는, 선생이 직접 그린 자화상을 통해 선연하게 부조浮彫된다. 그럼으로써 이번 시집은 은은한 ‘시’의 파문으로 가닿는 궁극적 자기 구원의 테마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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