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있는 주막집

[스크랩] *^술이 생긴 이야기^*

산술 2013. 5. 24. 16:57

*^술이 생긴 이야기^*

 

 

옛날 어느 곳에 부자(父子)가 살다, 아버지가 이미 늙어 병이 들었
는데, 효심깊은 자식놈이 살려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각처로
수소문울 하여 좋다는 약은 다 구해 써 봤건만, 도무지 효험이 없어
안타깝기 한이 없다.
그러자, 중국 북경에 명의가 있다는 얘길 듣고, 그야말로 불원천리가
아니라 불원삼천리하고 찾아 가는 것이다. 그래 의원을 찾아보고 가
져간 예물을 드리며 병증세를 얘기하니, 대단히 난색을 보이면서

그런다.
"네 효성이 하도 갸륵해서 일러 주기는 한다마는, 의술은 인술(仁術)
인데, 차마 일러줄 수가 없구 ! ''''''
사람의 생간 세 보를 맹물에  푹 고아서 먹이면 낫겠다는마는, 무슨
수로 구해서 드린단 말이냐 ?"
약을 알았으니 기쁘긴하나, 맥이 탁 풀린다.
(무슨 수로 사람의 생간을 ? 그것도 셋씩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고향엘 돌아오는데 어차피 약은 만들어야겠고, 집
가꺼이서는 안될 노릇이라, 멀찌감치 의주(義州) 근방에서 마련해 가
지고 가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칼을 하나 사서, 새파랗게 갈아수건에
감아서 품에 품고, 높은 재 위에서 기다리자니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친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리려는 일념에 잔뜩 도사리고 기다린다.
그러는데 흥얼 흥얼 글귀 외우는 소리가 들리면서, 한 선비가 갓을 반
듯이 쓰고 도포 자락을 날리며 고개를 올라온다.
(저런 도학자를 죽였다가 죄로 안 갈까? 아니지, 죄로 갈 것은 이미
각오한 거고, 사람중에서도 선비라면 최고의 존재니까, 약도 효력이
있겠지!) 속으로 자문자답하다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뛰쳐 나가
눈깜짝할 사이에 찔러 넘어뜨렸다. 간을 꺼내 유지에 싸서 간직하고
시체는 그 아래 사태 고랑으로 내리 굴려 처박아 버렸다. 흙을 파서
핏자국을 덮고 다시앉아 가다렸다. 그러는데, 찌렁찌렁 쇳소리가 나
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외면서 오기에 보니, 송낙 쓰고 장삼
입은 중이 욱환장을 울리며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중이라면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데, 저를 죽였다간 내가 지옥으로
가지? 지옥으로 가든 말든 우리 아버지만 살리자. 에잇"
뛰쳐 나가 또 하나를 요절을 내니, 이제는 제법 차근차근히 뒷처리를
할 만큼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러기에 한 번 악한 일을 한 사람이 다시 또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게로군!) 속으로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는데, 어디서 껄껄 웃는 소리가
들린다. 훑어봐도 아무도 없다. 그러는데 또 껄껄 껄껄 웃는 소리가
들린다. 보니 미친 놈이 하나 활개를 벌려 춤을 추며 온다.
(저런 것도 약이 될까?  엣다, 모르겠다. 날 저무는데 이것 저것 가릴
새 있느냐?)  뛰쳐 나가 퍽 찌르니 낄낄 낄낄 내내 웃다가 숨져 버린다.
셋의 간을 유지로 잘 싸 간직하고 시체는 모두 한고랑에  집어넣고, 그
런대로 흙을 두둑이 덮어 봉분을 만들어 꼭꼭 밟아 주고는, 그 끔직한
자리를 떠났다.  그 약 효력으로 아버지 병은 씻은 듯이 나아, 동네
출입까지 자유로이 하게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세 사람의 영혼에
대하여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하여 세 사람의 소상(일주년)이 가까
워 오자, 몇 가지 음식을 정갈하게 장만해 가지고  그들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이다. 무덤 앞에 되는 대로 진설하고 일장 통곡하여 위로한
후에 발길을 돌이키려다가, 그제사 정신차려 보니 , 무덤 위에 전에
보지 못하던 풀이 길길이 자랐는데, 무슨 곡식 같은 것이 제법 이삭을
이루어 열려 마침 철을 맞아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천생 농사꾼 자식이라, 신기한 생각에 죽죽 훑어 모았더니 거의
말곡식이나 된다. 음식 담아 가지고 간 자루에다 담아서 메고 돌아왔다.
집의 땅에다 두어 해나 되풀이해 심었더니, 이제는 섬곡식이나 되었는데,
밥을 해서 먹으면 그냥 모두 똥으로 나온다. 이리 저리 해먹을 궁리를 하
던 끝에 빻아서 가루를 내어 먹고, 잘 빻아지지 않는것은 모아서 쌓아 두었더니,
장마철에 썩었는지 시큼한 냄새가 난다.
그래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술이 생겨났다. 애당초 이
곡식은 밀이라, 지금도 밀을 자세히 볼라치면 배를 갈라 죽은 원한이 사
무쳤는지, 아래에서 위까지 칼자국이 뚜렸이 나 있다.
그나 그뿐인가, 그렇게 해서 생긴 술이라, 먹으면 죽은 세 사람의 혼이
차례로  나온다고 한다. 처음엔 선비 차례라 젊잖고 예의 바르다가도,
둘째로 중의 혼이 나오면 평생에 부처님 앞에 차려 놓고 불공 드리던 습
관이 있어, 못 먹겠다는 사람에게도 자꾸 드시라고 억지로 권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 뒤엔 이젠 마지막 혼이
나오는 판이라. 어른 애도 몰라보고 마구 본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 나물먹고 물마시고
글쓴이 : 논두렁밭두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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