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별과 詩가 있는 마을

[스크랩]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산술 2013. 4. 5. 17:31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  이원규 / 곡  안치환 / 노래 안치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 시인 이원규



                "빨치산 편지",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돌아보면 그가 있다",
                "옛 애인의 집" 등의 시집을 낸 이원규 지리산 시인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길"이라고 말한다.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등산과 입산

                산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등산은 말고 입산하러 오시길.
                등산은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듯이 종주를 하다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발뒤꿈치 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계곡을 타고 흔적 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몸 속에 이미 지리산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정 무정의 뭇 생명들이 곧 나의 거울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 속 욕망의 화산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닙니다.

                산에 오를 때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흥얼거리며
                '만만디'('천천히'의 중국어) 오르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사람도 살고 산짐승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결에 나의 냄새와 노래를 실어 보내면 멧돼지나 반달곰이나 독사들도
                알아서 길을 내주지요.
                처음엔 향기로운 풀꽃을 따라 갔다가 상선약수의 계곡 물을 따라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원규 <시인>


                 
                출처 : 광주우리산악회
                글쓴이 : 육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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