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 비에 소리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 할 날들만 깊고 멉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빛깔
봄에는 봄의 빛깔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빛깔이 있다.
겨울 지등산은 지등산의 빛깔이 있고
가을 달래강에는 달래강의 빛깔이 있다.
오늘 거리에서 만난 입 다문 이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살아오면서 몸에 밴 저마다의 빛깔이 있다.
아직도 찾지 못한 나의 빛깔은 무엇일까
산에서도 거리에서도 변치 않은 나의 빛깔은.
큰산 가는 길
큰산으로 가는 길에는 깊은 물이 있다
물은 큰산을 품어 더욱 깊어지고
산은 물을 따라 내려가 더욱 맑아진다
마음이 크다는 것은 마음이 깊다는 것이다
마음이 깊다는 것은 마음이 맑다는 것이다.
우암산
제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려고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더 완전해 보이려고
헛되이 꿈꾸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고 살아갑니다
산은 언제나 제 모습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산을 올려다보면서
산처럼 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제 자신의 허영에 있음을
산은 알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
부끄러움도 부족함도 모두 다 제 모습임을
산을 알고 있습니다
산은 제 모습보다 더 대단해 보이려고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제 모습보다 더 완전해 보이랴고 헛되이 꿈꾸지 않습니다.
강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
너희는 우리를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는 우리를 더럽다 하겠느냐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종환 시집 중에서
글 : 공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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