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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는 하지 말아야
미국에서는 생명이 위급하게 됐을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나 "영양 공급 장치"에 매달리지 않고 아기가 엄마 젖을 떼듯 천천히 약을 줄이며 눈을 감겠다는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 운동이 번지고 있다. 즉,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을 높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 25만명이 죽음을 맞고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의사나 환자나 환자 가족은 치료에만 관심이 있지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려한다. 의사들은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충실해 자기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 환자의 생명을 늘리는 걸 사명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 한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때론 환자 입장에선 고문에 가까운 시술이 동원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형법상의 제재와 병원측의 수익 문제도 일조를 하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맞는 죽음이야 말로 환자나 가족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죽음일 것이다. 중환자실은 각종 기계의 숲이다. 중환자실을 오가는 사람들은 온통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하기도 좀체 힘들다. 그런데도 환자나 가족들은 끝까지 치료 받으려고 한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평소 빨리 죽고 싶다는 사람도 막상 병원에 오면 하루라도 더 살게 해 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린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50%를 죽기 전 한 달, 25%를 죽기 전 3일 동안 쓴다고 한다. 많은 선진국에선 '나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문서를 미리 써두면 나중에 말기에 이르렀을 때 의료진이 그가 써둔 의사(意思)에 따라 조치를 하는 제도가 자리 잡았다. 이를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 Advance Medical Directives)”라고 한다.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거나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의학적 치료에 관한 의사(意思)결정 능력이 있을 때 자신의 의사 표시를 미리 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의 의사(意思)를 가족들에게도 알려주어 가족들도 평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의 질에 대하여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녀 6명 중 5명은 하버드대, 1명은 예일대를 나와 모두 성공한 어머니 전혜성 박사의 얘기다. 그녀는 남편이 뇌졸중이 점점 악화되어 임종이 다가올 즈음 병상에서 남편에게 과거의 즐겁고 좋았던 추억만 얘기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남편은 자기와 함께해서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얘기했고, 자기가 있었기에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었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자가가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죽음에 임박한 상황을 대비하여 생명의 연장 및 특정치료여부에 대해 자신의 의사(意思)를 서면으로 미리 표시하는 사전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두면 훗날 죽음에 임박했을 때 본인은 물론 담당 의사(醫師) 및 가족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마감하는 방식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최성룡 에세이집 [마음이 청춘이면 몸도 청춘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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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 Leaves - Nat King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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