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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만든 책이 아니다. 땀으로 만든 책이다. 그것도 44년 동안 수십 명의 땀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1969년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험한 산길을 걸어 기록한 산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실로 아둔한 일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GPS며 인터넷이 다 되는 정보화 시대에 험한 산봉우리를 몸으로 부딪쳐 겪은 결과물을 펜으로 세심히 표시해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도 거슬러가 보면 결국 원작자가 있다. 제대로 된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도 월간山은 묵묵히 밀어붙여 왔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월간山이 잔머리 쓰지 않고 시대를 역행해 만든 무모한 뚝심의 완성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출판사에서도 4,000개가 넘는 산의 등산지도를 만든 곳은 없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대한민국에 산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산꾼들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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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책을 펼친 모습. 한 페이지의 가로 길이가 50cm이며 펼치면 1m에 이르는 초대형 지도다.
- 기존에 없던 기능의 혁신적인 지도집
지도집에는 등산인들을 위한 혁신적인 선물이 담겨 있다. 등산로의 거리를 측정해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등산로는 붉은 점선으로 표시했는데, 점선 하나가 100m이다. 점선이 5개가 이어진 500m마다 검은 점을 표시해 쉽게 거리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지도만 보고도 산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얼마인지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작업을 한 것이다. 등산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혁신적인 아이디어이며, 이를 통해 산행이 얼마나 수월해질는지 알 것이다.
장거리 종주를 즐기는 골수 산꾼을 위해 백두대간, 정맥, 기맥, 지맥의 선을 모두 표시했다. 산줄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이런 장거리 산행에서 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지도에 이런 산줄기 라인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했다는 것은 돈 주고 쉽게 살 수 없는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신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 선생이 직접 감수하고 수정했다. 산줄기 종주를 즐기는 꾼들을 위한 교과서인 셈이다.
산줄기 등고선에 음영을 넣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입체적인 산의 모양은 실제 지형과 정확히 일치해 한눈에 산의 모양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도집을 펴면 두 개의 지도가 1m에 이를 정도로 크다. 페이지당 가로 길이가 50cm에 이르는 큰 사이즈다. 넓은 면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지도 판독이 수월하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보다 글자 크기를 확대해 가독성이 뛰어나며, 자연스러운 색상을 사용해 오랜 시간 보더라도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했다. 관공서에 자료를 요청해 누락되기 쉬운 공사 중인 도로도 모두 표시했다. 단, 노선이 확정되지 않은 설계 중인 도로는 표시하지 않았다.
지도에는 등산로 외에 전국의 MTB코스, 걷기길을 담았다. 걷기길은 북한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길, 강화둘레길 전 구간을 GPS 답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시했다. 전국 MTB코스 역시 GPS 답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시했다. 정확한 독도를 위해 진북과 도북, 자북을 페이지마다 표시했다. 지도는 산뿐만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모두 담고 있다. 지형, 도시, 도로, 지명, 등산로 등 대한민국의 모든 걸 담았다. 국가 기본도인 국토지리정보원 5만분의 1 축척 지형도를 전부 담았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7만 원에 시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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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두에 실린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1:50,000 지형도와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의 도각 비교. 가로 길이는 같고 세로 길이는 3분의 2에 달한다.
- 등산로 정보는 <월간山>과 동아지도가 조사한 정보를 취합했다. 동아지도는 1993년 <산으로 가는 길 등산지도>를 낸 바 있으며 18년간 등산로를 조사하고 편집했다. 특히 동아지도는 모든 노하우와 힘을 이번 지도집 지도제작을 위해 쏟아 부었다.
안동립 “GPS 트랙으로 표시한 정확한 등산로”
동아지도의 안동립(56) 대표는 1975년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지도 일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지도 제작 작업만 해온 외길 지도쟁이다. 한국소문사와 중앙지도사에서 일한 그는 1988년 동아지도를 세웠다. 그는 “이런 지도책은 여태껏 없었다”고 자부한다.
“5년의 제작 기간이 걸렸습니다. 컴퓨터에서 지도 데이터를 한 번 여는 데만 3분 이상 걸릴 정도로 방대한 용량입니다. 5만분의 1 국가기본도 242매가 좌우 변형 없이 그대로 실렸습니다. 위아래는 3분의 2크기로 잘라냈고요. 지형도를 모두 구입한다면 70만 원이 넘는 돈이 듭니다. 게다가 한자로 가득하고 등산로나 입체적인 능선 표시도 없죠. 이걸 중앙지도사에서 제본하면 100만 원 넘는 돈이 듭니다. 그러니 7만 원이면 10분의 1가격이니까 굉장히 저렴한 거죠.”
안 대표는 “우리나라의 모든 등산로를 담았다”고 한다. 물론 누락된 등산로가 있겠지만 그런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큰일을 했다고 말한다. 또 등산로는 인터넷에 공개된 GPS 트랙을 수년간 수집해 제작했기에 등산로 정확도가 상당히 높다는 설명이다. 지도를 펼치면 1m에 이르는데 기존 인쇄소의 기계로 제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유례가 없는 작업이라고 한다. 지도 테두리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여백에 등산로를 연장해 표시했다. 산에서 길을 찾는 산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헤아려 길찾기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는 “등산지도의 완결판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등산지도’인 건 분명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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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지도 제작을 맡은 동아지도의 안동립 대표./ 등산로를 직접 표시한 이종훈 선생. 현재 4,200여 산을 탔으며 1990년대부터 2008년까지 가장 많은 한국의 산을 탄, 다산 등정 1인자였다. <사진 이신영 기자>
- 4,000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산에 대한 등산로를 표시할 수 있었던 데는 만산회의 이종훈, 김은남 선생의 도움 덕이 크다. 만산회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2008년 세운 모임으로 1,000개 산 이상 오른 다산(多山) 산행을 즐기는 이들의 모임이다. 당시 이들이 오른 산 개수를 다 합치면 1만 개가 된다고 해서 ‘만산회’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회원수가 10명이 넘는데 회원 개개인이 수천 개씩 산을 오른 이들로, 국내 최다 산 오름 경쟁을 하고 있다. 이종훈, 김은남 선생은 만산회에서도 등산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이종훈 “산 개수만으로도 최고의 지도책”
이종훈(78) 선생은 1977년부터 오르는 산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건국대산악부에 재학 중이었던 큰아들 이동구씨가 <백산악>이라는 100명산 등산지도책을 선물해 주어 체크하면서 하나씩 산을 타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이 선생은 현재 4,200여 산을 올랐다.
1980년대에는 지금의 안내산악회 개념인 동부고속관광을 이용했는데 5만분의 1 지형도에 등산코스를 표시해서 회원들에게 나눠 주는 등 수고료 없는 산행대장 역할을 했다.
그는 산을 정확하게 타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늘 새로운 산을 타기에, 등산로가 있는 산은 대부분 다 탔기에 개척산행을 많이 한다. 또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을 탔다. 그러므로 모든 동선을 짜고 산행지를 조사하는 것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집을 출발하는 시간부터 몇 분에 출발하는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지방에 도착해, 몇 분에 출발하는 시골버스를 타고 산행을 시작할지 이미 짜여 있다. 계획한 곳으로 산을 올랐다 내려와 몇 시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와 정확히 집에 몇 시 몇 분에 도착할지도 정해져 있다. 이것들이 딱 맞아 떨어질 때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산 개수는 타다 보니 늘게 된 거고, 새로운 산을 오르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산을 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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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임도에 붉은 점선으로 표시한 MTB 코스. MTB 라이더들의 GPS 실트랙을 바탕으로 작업했다. / 100m대의 낮은 산도 등산로가 있는 곳은 표시했다. / 제주 올레 같은 걷기길을 지도에 표시했다. / 페이지 여백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등산로의 진행방향을 표시했다. / 유명하지 않은 산은 월간山 기자들과 만산회원들이 수기로 표기하여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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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은 1995년 1,000산을 올라 한국일보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한국 최다 산을 오른 인물로 인정받았다. 1990년대부터 2008년 정도까지 20여 년간 독보적인 한국 최다 산 오름 1인자로 산꾼들의 부러움을 샀으나 지금은 순위가 밀렸다. 같은 만산회의 문정남, 심용보 같은 회원들은 8,000개 산과 봉을 넘어섰다. 봉우리 헌터로 불리는 이들로 한 번 능선에 오르면 여러 개의 산을 빠르게 쳐 산 개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한 달 중 24일 이상을 산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산행기록만큼은 이종훈 선생을 따라 올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전국 600산 등산지도> 책을 성지문화사에서 내기도 했다. 정확도를 중시하기에 개념도보다 등고선 지도를 선호한다. 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해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에 꼼꼼히 등산로를 수기로 표시했다. 그는 이 책의 장점으로 “등산로가 표시된 산의 개수가 많아서 좋다”고 한다. “산꾼들에겐 산의 개수가 많을수록 최고의 책”이라며 “골수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한다. 또 “작업한 노고에 비해 거저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7만 원이면 산 하나에 10~20원이라는 건데, 이런 귀한 책을 그 가격에 살 수 있다면 거저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다른 데서 이 가격에 이런 책을 내놓을 수 없다고 봐요.”
이종훈 선생과 김은남 선생은 이윤을 바라지 않고 월간山을 위해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 작업을 해주었다. 이 선생은 “다음 산꾼들을 위해 그리 했다”고 한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잘 다닐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내가 1970~1980년대에 이런 책이 없어서 고생고생 하면서 다녔으니까, 뒷사람은 편하게 하는 마음에서 금전적인 득실 없이 도움을 주기로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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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위부터)이종훈, 김은남, 박성태 선생이 작업한 무수한 흔적. / 지도책 서두에는 신산경표 산줄기가 실려 있으며, 박성태 선생이 직접 감수했다. / 페이지마다 도북, 진북, 자북을 표시했으며, 등산로의 점선은 100m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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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남 “산악계에 길이 남을 지도책”
김은남(70) 선생이 산을 헤아리며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김은남 선생은 오르는 산을 시조로 쓰기 위해 산을 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 2,600여 개가 되었다. 즉 2,600여 편의 산 시조를 쓴 것이다. 그동안 1,000개의 산을 오르고 펴낸 <일천산의 시탑1>, <일천산의 시탑2>를 펴내 2,000개의 산을 시조로 출간했다. 그는 3,000편의 산 시조를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더불어 <시조시인 산행기>, <주말 난 어느 산으로 가지> 같은 산행가이드북을 펴냈으며 1997년부터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는 산 소개 기사를 산악잡지에 연재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의 발간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등산가이드책을 보면 약식 개념도가 많은데, 등고선이 있어야 산을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남들 따라가는 사람 말고, 사람들 이끌고 가는 대장이나 진정한 산꾼이라면 꼭 있어야 할 책이에요. 펼쳐서 복사하기도 좋고 낱장으로 뜯어서 비닐에 담아 산에 들고 다니기도 좋아서 실용성이 있어요. <신산경표>만큼 산악계에 길이 남을 책이라고 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누군가는 꼭 남겨야 할 책이고, 그 역할을 월간山이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김은남 선생은 등산로를 직접 표기한 산중에서 기억에 남는 걸로 정선의 돌도끼산(968m)을 꼽는다. 평소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산행 중 신석기시대의 돌도끼를 직접 발견했으며, 이를 계기로 돌도끼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이번 지도 작업에 금전적인 실리를 따지지 않고 동참해 주었다.
“평생 은행에서 일했지만, 돈 몇 푼 가지고 따지면 작은 장사꾼입니다. 큰 일 하려면 작은 손해는 감수해야죠.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앞으로 산에 다닐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도움될 텐데 당연히 해야죠. 이 일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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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후세의 산꾼들을 위해 흔쾌히 작업에 동참한 김은남 선생. <사진 이경민 기자>/ 대간, 정맥, 기맥, 지맥 선을 감수한 박성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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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의미 있고 무척 편리한 지도집”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가 주목 받는 것은 백두대간, 정맥, 기맥, 지맥을 모두 표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기는 것처럼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우리나라 산의 숙제를 푼 이가 <신산경표> 저자인 박성태 선생이다. 우리나라 산줄기를 정리한 이를 여암 신경준-고산자 김정호로 잇고, 다시 발굴한 이를 이우형-조석필로 잇는다면 마지막 자리에서 현대적으로 완성한 이가 박성태다.
박성태 선생은 이번 지도집에 대해 “단위 산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등산지도책을 만든 건 대단한 일”이며, “대간, 정맥, 기맥, 지맥 모두를 표시한 것도 최초”라며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보통 지맥 산행을 하려면 일반지형도에 직접 펜으로 그어 지맥 산줄기를 표시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작업 없이 지도만 들고 산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박 선생은 “종주 산꾼들 입장에서는 무척 편리한 지도집”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월간山이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를 만드는 것을 두고 디지털 시대에 쌀 한 톨에 훈민정음을 새겨 넣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무모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이는 손해 보는 장사에 왜 불나방처럼 뛰어드냐고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손익으로 따질 수 없는 일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험산을 오르는 무모하고 행복한 행위를 통해 알고 있다. 산꾼 마음은 산꾼이 안다고 했다. 월간山은 이 땅의 산꾼들이 더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를 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