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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갑니다. 놓으세요. 나 없으면 안 될 거라는 그 마음,
살면서 고마움을 많이 느낄수록 더 행복해집니다. 세상에 나 혼자 뚝 떨어져 있는 '외로운 나'가 아니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속의 나'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고마움을 느낄 때 우리는 진리와 더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들...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싶어 하고 검증받고 싶어하는 욕망.
남을 진정으로 위하고 남이 잘될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는, 그런 선한 마음은 나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잡념도 없어지고,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오늘, 기분이 나쁘다면, 비록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를 도와줄 생각을 하십시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내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의 결점이 딱 보이는건 그리고 그의 결점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건, 내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원래부터 나쁘거나 좋거나하는 건 없습니다. 그 사람과 나와의 인연이 나쁘거나 좋거나 하는 것 뿐입니다. 악한 사람도 나를 구해주는 은인으로 만나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선한 사람도 길을 가다 내 어깨를 치고 가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 여덟아홉 명 모이는 모임에 가면 나를 이상하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두세명 정도 있고 나를 처음부터 괜히 싫어하는 사람이 한두명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니 너무 상처받지 말고 사시길.
몇 백, 몇천만짜리 명품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뭐하나요. 사람이 명품이 아니라면.
인간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풀 때, 왜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까,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까, 이런 마음에서 출발하면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왜냐면, 상대에게 대한 이해가 아닌 나의 요구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왜 상대가 나에 대해 저렇게 생각하는지, 나의 어떤 면 때문에 오해를 했고 힘들어하는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하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비난은, 많은 경우 비난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비난하는 사람의 불행한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비난하는 사람이 오히려 애처롭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적이 많나요? 그렇다면, 남 흉보는 버릇부터 고치세요. 그리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세요. 적을 만들지 않는 자가 적들을 다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보다 훨씬 더 대단합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사람 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같이 동조하면서 말려 들어가지 말고 같이 맞장구치며 그의 약점을 들춰내지 말고 다른 주제로 옮기세요. 너무 많은 말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을 하기 쉽나니 말이 많아지면, 언제나 스스로를 단속하세요.
유능한 상사가 되는 조건으로 흔히 부하 직원보다는 기술적인 분야에 있어서 더 많이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부하직원과의 친밀도, 접근 용이성, 문제가 생겼을 때 적당한 질문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제가 승려가 된 이유는, 이렇게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습니다.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서 끝없이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염려하면서 그들의 기준점과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삼심대가 되는 어느 봄날 내 마음을 바라보다 문득 세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빈다. 일주일 전에 만났던 친구가 입었던 옷,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얼굴 화장이나 머리 모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친구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친구가 나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을까요?
보통 사람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바쁩니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사실 알고 보면 잠시 하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아주 잠깐 남 걱정이나 비판하다가 다시 자기 생각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요?
둘째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살고 있나요? 내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듯, 모두가 나를 좋아해줄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내가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살고 있나요? 내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듯,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면 자연의 이치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셋째는,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입니다. 내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어서 따뜻한 나를 위한 것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는 것도 결국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외로운 내 처지가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면서 욕심껏 잘해주는 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부처가 아닌 이상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하고 사십시오. 생각만 너무 하지 말고 그냥 해버리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한 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맙시다.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옳은 말보다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사람과의 인연은, 본인이 좋아서 노력하는데도 자꾸 힘들다고 느껴지면 인연이 아닌 경우일 수 있습니다. 될 인연은 그렇게 힘들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이루어져요. 자신을 너무나 힘들게 하는 인연이라면 그냥 놓아주세요.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가 매일매일 쏟아내는 말들 중에 얼마만큼이 진짜 내 말이고 얼마만큼이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짜집기해서 내 말로 둔갑한 것일까요? 나는 진짜로 나만의 말을, 얼마나 하나요? 진짜 내 말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요?
전에 없었던 것이 지금 생겨났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전부 사라집니다. 말씀을 듣고 깊은 영혼의 울림이 오더라도 부처님이나 다른 성인이 내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사실 다 마음이 장난입니다. 수행자가 찾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을 찾는 것이지 없었는데 새로 생겨난 것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비방만 받는 사람이나 칭찬만 받는 사람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칭찬도 비난도 모두 속절없나니 모두가 제 이름과 제 이익의 관점에서 하는 말일 뿐.
누군가 비난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비난받는 사람이 비난받을 짓을 했다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비난하는 사람이 사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지 마세요!
내 주변 사람들을 내 마음에 맞게 바꾸려 하지 말고 오히려 바꾸려는 내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 훨씬 더 빠릅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슨 수로 다른 사람을 내 방식대로 바꾸겠습니까?
어렸을 땐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인 것들. 에어컨 바람, 뷔페음식, 공포영화, 비행기타기, 대도시, 밤새 놀기... 어렸을 땐 싫었는데 지금은 좋은 것들. 잡곡밥, 걷기, 명상, 혼자있기, 모차르트, 운동, 차...
종교인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종교적 상징에 얽매어서 다른 종교적 상징들과 잘 부딪치는 표층적 종교인들과 상징 너머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심층적 종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 간의 회합은 심층적 종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중생은 내가 원하는 식으로 일이 되길 바라고, 부처는 본인 앞에 있는 사람이 원하는 식으로 일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부처는 날마다 좋은날이지만, 중생은 어쩌다 좋은날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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