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별과 詩가 있는 마을

[스크랩] 깊이 묻다 / 김사인

산술 2013. 1. 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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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묻다 / 김사인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늦가을 / 김사인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 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린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그를 버리다 / 김사인

 

죽은 이는 죽었으나 산 이는 또 살았으므로

불을 피운다 동짓달 한복판

잔가지는 빨리 붙어 잠깐 불타고

굵은 것은 오래 타지만 늦게 붙는다

마른 잎들은 여럿이 모여 화르르 타오르고

큰 나무는 외로이 혼자서 탄다

 

묵묵히 솟아오른 봉분

가슴에 박힌 못만 같아서

서성거리고 서성거리고 그러나

다만 서성거릴 뿐

불 꺼진 뒤의 새삼스런 허전함이여

 

용서하라

빈 호주머니만 자꾸 뒤지는 것을

차가운 땅에 그대를  혼자 묻고

그 곁에서 불을 피우고

그 곁에서 바람에 옷깃 여미고

용서하라

우리만 산을 내려가는 것을

우리만 돌아가는 것을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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