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 - 이해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원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12월 - 정호승
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각장애인이
종각역에서 내려
흰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12월의 시 - 강은교
잔별 서넛 데리고
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처마 끝마다 매달린
천근의 어둠을 보라
어둠이 길을 무너뜨린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일년의 그림자도 지워버리고
그림자 슬피 우는 마을마저 덮어버린다
거기엔
아직 어린 새벽이 있으리라
어둠의 딸인 새벽과
그것의 젊은 어머니인
아침이
거기엔
아직 눈매 날카로운
한때의 바람도 있으리라
얼음 서걱이는 가슴 깊이
감춰둔 깃폭을 수없이 펼치고 있는
바람의 형제들
떠날 때를 기다려
달빛 푸른 옷를 갈아입으며
맨몸들 부딪고
그대의 두 손을 펴라
싸움은 끝났으니, 이제 그대의 핏발선 눈
어둠에 누워 보이지 않으니
흐르는 강물소리로
12월의 시 - 김사랑
마지막 잎새같은 달력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일년동안 쌓인 고통은
빛으로 지워버리고
모두 다 끝이라 할 때
후회하고 포기하기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로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네
그대 사랑했으면 좋겠네
그대 행복했으면 좋겠네
12월의 마지막 저녁에 - 안도현
세끼 밥 굶지 않아도 배가 고프고
지붕에 비가 새지 않아도 등이 시리다
기다려도 희망은 나를 데려가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절망은 나를 따라온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은 줄 것이 없다고 하고
가진 게 없는 이들은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프다
1996년 12월의 마지막 저녁에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미지;백두산 가을풍경
'그룹명 > 별과 詩가 있는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부르면 눈물나는 이름 ... 오광수 (0) | 2013.01.09 |
---|---|
[스크랩] 신년송(新年頌) / 이해인 (0) | 2013.01.09 |
[스크랩] 지독한 이 그리움을 어찌하나요 (0) | 2012.11.30 |
[스크랩] 가슴으로 불러보는 이름 (0) | 2012.11.30 |
[스크랩] 안아주면 좋을 겨울 (0) | 2012.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