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 멀어지면
시:김현숙 / 낭송:이재영
밤기차 어둠을 가르고 지나가면
철길 건너 아득한 빛 찾아 떠나는 나를
갈잎처럼 스치는 당신은 누구세요
새벽녘이 되어서야 손끝에 닿은
염원 같은 문고리를 비틀지도 못한 채
겨우 인기척만 묻혀놓고 돌아오는 길
그렁한 눈으로 마주친 그대는 또 누구세요
아쉬움만 쌓여가는 무정세월 앞에
신탑처럼 돌을 쌓고 돌아오는 새벽
스산하게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던 그대 역시
간절히 열고 싶었던 문이 있었던가요
어쩌면
잠그지 않았어도 서로가 열 줄을 몰랐던
그대의 문과 나의 문이라면
여는 방법이 조금은 다르게도
우리는 미닫이와 여닫이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는지요
어쩌면, 서로를 향해 고독첩을 써 붙인 채
갈망의 빛으로 마주보며 앓아온 것 또한 아니었는지요
정녕, 사랑이란 말을 짓기 힘들어
그렇게 모르는 척 스치면서
밤부터 새벽까지 서로가 흘려놓은 수정알만
꼭꼭 밟아가며 걸었던 건 아니었는지요
평택발 23시 53분, 기적소리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서로의 맞은편에 세워둔
그대의 탑과 나의 탑을 향해 걸으면서
쓸쓸한 영혼끼리 얼마나 어깨를 스쳐야
나 그대 사랑한다는 또 하나의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대와 나, 찻잔을 함께 내려놓는
내일 밤도 기차는 떠나고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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