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봉 희생자들 육필 곳곳서 발견 ‘청소년기 위험한 순간들 산을 알았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경남=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수많은 훈련과 등반에 젊음이 훌쩍 지나간 느낌이다. 히말라야 첫원정인 브로드피크에서 또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흘린 땀이 헛되 지 않았다. 드디어 2004년 5월15일 나는 로체(8천516m) 정상에서의 영광을 안았다. 이것이 어쩌면 정해진 나의 운명이고 숙명인 것 같다. 등반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위 해 다하지 못한 일들도 많았지만 로체의 여신은 우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지난 1일 히말라야 K2봉(8천611m)을 등정한 뒤 하산하다 불의의 사고로 산화한 2008 플라잉 점프 한국K2원정대 황동진(45) 등반대장이 한 회고록에 남긴 글이다.
경남산악연맹 소속 황 대장은 집념의 정통 산악인이다.
17세 되던 해에 친구들과 함께 마산 무학산에 올라간 것으로 산과의 첫 인연을 맺은 그는 1980년 한국산악회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브로드픽크 등반, 1994년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1995년 체육훈장 수상, 2004년 로체 등정 등 30년간 산을 사 랑한 ‘산꾼’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청소년기 몇차례 위험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산을 알았기에 극 복할 수 있었다”고 돌아보고 “몇권의 책보다 순수한 바람과 구름, 바위와 흙내음 자 연과 호흡하는 그때 그 순간이 더 매력적이고 행복했다”고 산을 좋아한 이유를 적었 다.
황 대장과 함께 산화한 박경효(29) 대원은 K2원정에 앞서 대원들과 강도높은 훈 련을 계속하면서 동호회 카페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제는 꿈이 아닙니다. 하루 하루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150여일 후 면 이곳에서 등반을 하고 있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요. 멋지지 않습니까?’ ‘통신골 훈련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단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K2를 원하는가가 중요하지요. K2를 다녀온 형들이 그러더군요. “K2 가면 그냥 죽는다” 이 말 한마디가 K2가 어떤 산인지 알려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박 대원은 1999년 지리산 등산학교를 졸업한 뒤 2004년 아마다블람 등정, 지난 해 에베레스트 등정 랑탕 얄라픽 등정, 올해 나야캉가, 얄라픽크 등반 등 젊은 나이 에도 불구하고 산에 빠져 살아온 청년이다.
특히 그는 2년간에 걸친 K2원정에 필요한 행정업무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살림꾼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수저부터 텐트까지 원정대 장비담당이었던 김효경(33) 대원 역시 2002년 백두대 간 종주, 2003년 대만 옥산 등정, 2004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 2005년 키나발루 등 반, 2006년 울산등산학교 졸업, 올해 나야캉가와 얄라픽크 등반 등 최강의 산악인이 되기 위해 산에 땀을 쏟았다.
경남산악연맹 조형규 회장은 왜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꾼은 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배운다. 히말라야는 산꾼들에게 이상실현을 위한 메카와도 같은 곳”이라고 답했다.
조 회장은 지난 5월 발대식에서 대원들에게 “K2등반을 통해 가슴 한구석에 키우 던 에델바이스 한송이를 꼭 피우고 무사히 돌아오라고 당부했는데..”라며 산이 좋아 산이 된 대원들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관련기사 보기 [연합뉴스 | 2008-08-05 17: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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